◇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 지음/640쪽·3만3000원·휴머니스트 ◇국가로 듣는 세계사/알렉스 마셜 지음·박미준 옮김/560쪽·2만2000원·틈새책방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신사. 이곳에서 일본 우익단체들이 일장기를 흔들며 기미가요를 부른다.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의 기미가요는 1945년 패전 직후 폐지됐으나 1999년 일본의 공식 국가로 다시 지정됐다. 틈새책방 제공
BBC, 가디언에 글을 기고해 온 신간 ‘국가로 듣는 세계사’ 저자는 11개국의 국가(國歌)를 통해 각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시카와 교장 사건 얼마 후 일본은 기미가요와 일장기를 공식 국가와 국기로 지정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일본인임을 자랑스러워해야 일본이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기미가요는 이 같은 민족주의 강화의 수단이었다.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기미가요를 서정적인 가사를 지닌 노래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우익단체들은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기미가요를 부른다. 저자는 “기미가요는 아름다운 노래지만 정치에 의해 훼손됐다”고 지적한다.
민족주의 역시 국가처럼 국민을 단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돼 왔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현실을 부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신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쓴 저자는 홀로코스트와 식민지배의 희생자들이 자신도 가해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적 연대를 통한 문제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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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통해 식민지배의 희생자임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함경도 나남에 거주한 일본인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패전 후 본국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에게 당한 성폭력을 에세이 ‘요코 이야기’를 통해 고발했다. 가해자로서의 한국인이 부각된 것. 이 책은 2005년 국내 발간 후 식민통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켰다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일부 국내 언론은 요코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가해의 역사를 가리려는 시도도 있다. 일본은 전범국인 동시에 원자폭탄 피해국이다. 1945년 8월 원폭의 기억은 일본 사회의 희생자의식을 강화했다. 우파 정치인들은 유대인과 일본인이 백인 인종주의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2차 대전의 책임은 희생자로서의 기억으로 대체됐다.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할 때 기억의 연대를 향한 첫 관문이 열릴 것”이라는 저자 지적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