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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집에 가축, 사람까지 모두 쓸어가 버린 을축년 대홍수

입력 | 2021-08-06 11:40:00

1925년 07월 18일






플래시백



‘전쟁터라 하더라도 타고 남은 기둥이나 허리 꺾인 나무 그림자는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가장 심한 지진이 있은 후라도 쓰러진 집의 형태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원리에는 아무 것도 없다.’ 1925년 7월 장마철 집중호우로 흔적조차 사라진 고양군 망원리(현 마포구 망원동)를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현장을 찾은 기자는 ‘동네에 서있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깡그리 깎아가고 말았다’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죠. 이해 을축년 여름에는 네 차례나 하늘이 뚫어진 듯 비가 쏟아졌습니다. 7월에는 경성을 포함한 중부지방이 엄청난 피해를, 8월에는 북부와 남부지방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죠.


①1925년 7월 1차 홍수 때 초가집 처마 끝까지 물에 잠긴 뚝섬 ②1925년 7월 2차 홍수 때 물바다가 된 용산의 거리 ③2차 홍수 때 왕십리에서 바라본 뚝섬의 모습 ④2차 홍수 때 지붕 가까이까지 물에 잠긴 용산 일대 ⑤2차 홍수 때 삼각정에서 뗏목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⑥동아일보 사원들로 구성된 구호반이 이재민들을 위해 가마솥에 밥을 짓는 장면




경성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한강 연안인 용산 마포 뚝섬 등이었습니다. 별다른 치수대책이 없던 시절이라 해마다 물난리를 피할 수 없었지만 1925년은 유독 심했죠. 삽시간에 불어난 물은 가재도구를 옮길 새도 없이 차올라 몸만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이재민들은 높은 곳으로 피신해 지붕까지 차오른 흙탕물을 보면서 공포와 추위, 굶주림에 울부짖어야 했죠. 제한급수를 하는 바람에 마실 물도 모자랐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죠. 한강 상류에서 집이 줄지어 떠내려 오고 가축들도 떠밀려 왔습니다. 작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서 한강 홍수 때 주안댁이 밧줄로 몸을 묶은 뒤 떠내려가는 참외 수박 돼지를 건져오는 모습은 차라리 낭만적 삽화라고 봐야겠죠.





이해 7월 두 번째 홍수 때는 전기 전신 전화 철도 등이 모두 끊겨 경성이 고립상태에 놓일 정도였습니다. 경성전기회사 용산발전소에 물이 차고 용산전화국도 침수됐죠. 수재민들이 임시숙소로 삼았던 열차의 객차까지 물에 잠겼으니 기차 운행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신속한 피해 집계는 엄두를 내지 못했죠. 나중에 집계한 결과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쓸려간 집 6363채, 무너진 집 1만7045채, 물에 잠긴 집 4만6813채였습니다. 이재민도 수만 명에 이르렀고 피해금액이 1억300만 원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이르렀다고 했죠. 당시 용산철도공원 임시천막 안에서 홀로 앉아 차오르던 벌건 물을 보며 30대 가장이 흘린 눈물이 절망적 상황을 압축해 보여줬을 법합니다.


①조선기근구제회가 이재민들을 돕자며 동정금품을 기부해 달라는 알림. 시대일보 조선일보 개벽사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②시대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3개 사가 경성의 지역을 나눠 구호 위문활동을 한다는 안내문 ③1925년 7월 21일 마포에서 무료 진료하는 모습




그러나 막다른 골목은 아니었습니다. 사회 각계에서 구호의 손길을 뻗어왔죠. 그 전해 설립된 조선기근구제회를 비롯해 청년 여성 종교 등 각 분야의 단체들이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주먹밥을 만들어 끼니를 잇게 하고 천막을 치거나 학교 면사무소 등을 빌려 몸을 누일 곳을 마련했습니다. 어린이들까지 위문단을 만들어 이재민들을 찾아다녔죠. 서울청년회 등 좌파 단체들도 기부금 모집에 나섰습니다. 기운 좋은 청년들은 결사대를 만들어 고립된 이재민들을 직접 구하러 나서기도 했죠. 그런데 조선총독부와 경성부는 경찰을 앞세워 이 단체들이 의연금과 동정물품 모으는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금품을 모으면서 반일의식을 높이고 모은 돈으로 반일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할까봐 불안했기 때문이죠.


동아일보는 집중호우가 그친 뒤 피해가 극심한 지역을 찾아가 참상을 전달한 ‘재지일순‘ 시리즈를 이어갔다. ①청량리 ②뚝섬 일대 ③동막 일대 ④창천리 ⑤망원리 ⑥이촌동




신문사들도 앞장섰습니다. 1차 홍수 때 동아일보는 제작을 맡은 6, 7명을 뺀 전 사원들로 4개 반을 편성해 현장으로 출동하거나 실태 파악을 했죠. 2차 홍수 때는 시대일보-이촌동, 조선일보-뚝섬, 동아일보-마포로 지역을 나눠 구호에 나섰습니다. 그래도 경쟁은 멈추지 않았죠. 조선과 동아는 홍수소식을 시시각각 호외로 전했습니다. 누가 더 빨리 호외를 찍어내느냐로 불꽃이 튀었죠. 그러다 호외가 뚝 그쳤습니다. 정전이 되는 바람에 윤전기가 멈췄거든요. 그런데 조선은 이내 다시 호외를 냈습니다. 꾀 많은 이상협이 석유 발동기를 미리 준비했거든요. 이를 뒤늦게 안 동아일보 편집국장 설의식은 분을 참지 못해 윤전기를 붙들고 대성통곡했습니다. 우리 신문업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원문




慘憺(참담)한 災後(재후)의 廢墟(폐허)에
再次(재차) 掩襲(엄습)한 濁流(탁류)의 暴威(폭위)
上流(상류)의 暴雨(폭우)와 下流(하류)의 潮水(조수)로
增水率(증수율)은 一時間(일시간)에 三尺三寸(3척3촌)
潮水(조수) 澎漲(팽창)으로 漢江(한강) 逆流(역류)
前途(전도) 危險(위험)한 漢江(한강) 增水(증수)
昨日(작일) 午後(오후) 五時(5시) 卅六尺五寸(36척5촌)


십오일 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조곰도 쉬지 안코 밤낫으로 하눌이 꺼진 것갓치 퍼부이서 물나라를 격근 경성 일대에는 다시 물셰례를 밧게 되엿다. 먼젓번 홍수에 불엇든 한강물이 넉자만 더 줄면 수준뎜에 달할만치 되엿든 물이 십륙일 오후 아홉시부터 한강물은 다시 불기 시작하더니 십칠일 오전 여셧시 경에는 벌서 삼십쳑이나 물이 불어 동서이촌동(二村洞)과 마포(麻浦) 일대와 독도(纛島) 전면은 물결치는 붉은 바다로 변하엿는데 십칠일 오후 다셧시까지 삼십칠쳑으로 전번 홍수의 최고 증수 삼십오쳑사촌보다 겨우 한자네치의 차가 잇슬 뿐이엇는대 비는 그냥 억수로 퍼부으며 증수률은 끔찍하게도 심하야 여섯시 동안에 이십척이나 증수되야 한시간에 삼쳑삼촌 이상의 증수를 보하여 장차 엇지 될난지 연강 일대는 위긔일발의 경우에 잇더라.

麻浦(마포) 一圓(일원) 마포 부근의 침수 가옥은 아래와 갓갓더라.
麻浦(마포) 三百二十戶(2백20호) 西江(서강) 二百戶(2백호) 孔德里(공덕리) 六十戶(60호)
이와 갓흔데 피난민은 각각 마포보통학교에 이백여명 마포청년회에 백오십명 로동집회소에 약 이십명을 수용하엿더라.

二村洞(이촌동) 方面(방면) 불과 여섯시 동안에 삼십여척의 물의 불어 한강반 동서부이촌동의 오백오십호는 전부 침수하야 주민들은 십칠일 오전 여섯시에 전부 룡산 긔차 안과 이촌동에서 가장 디대가 놉흔 양영(養英)학교 긔타로 피난하엿는데 한번 들엇든 물이 끼자 기우러지고 허물러진 집에 흙을 바르고 기둥을 바로 세우든 주민들은 또다시 물란리를 당하야 잠 못 자고 먹지 못하야 여지업시 피곤한 몸들을 잇글어 구제소에 쓰러진 듯이 누어들 잇섯는데 이촌동 피란민은 여덜대의 객차에 칠백명을 수용하엿스며 팔십명은 양영학교에 수용되엿더라.

纛島(독도) 一帶(일대) 전번 물에 폭 쌔왓든 뚝섬(纛島) 일대는 십칠일 아츰까지에 일천이백호가 또 침수되여 인가는 거위 지붕만 내여놋코 침수되엿스며 종묘댱의 과실나무도 꼭대기가 뽀죽뽀죽 보일 뿐인데 리재민 사천여명은 전과 갓치 례배당과 보통학교와 면사무소에 수용되엿는데 류실가옥도 종종 잇서 이번에는 손해가 대단히 만흐리라더라.

汝矣島民(여의도민)의 危急(위급)
식량 절핍하나 구제책 망연
한강 건너 여의도(汝矣島)에는 일백이십오호가 잇는데 일전 홍수에도 삼십호가 침수하엿섯는데 그때에도 식량이 결핍하야 굼는 사람이 팔십여명이나 달하얏던 바 십오일에 동우구락부(東友俱樂部)에서는 백삼십인에게 쌀 사홉식 논하주어 겨우 련명케 하엿던 바 이번 비에 또 물이 잠겨 침수가옥이 만흘 모양이나 교통할 수가 업서서 알 수 업는데 그들을 지급히 구제할랴면 인천에서 수증긔선을 청하여야 되겟스나 수증긔선은 도뎌히 올라올 수가 업슴으로 양군텽에서는 구제책을 강구 중이라더라.

龍山(용산) 刻々(각각) 危險(위험)
뎨방 사이로 물이 숨어 드러와
鐵道局(철도국) 昨日(작일)부터 休業(휴업)
룡산 뎨방이 거듭 당하는 물에 매우 위험하게 되엿스며 뎨방 사이로 강물이 숨어 드러오는 위험한 상태에 니르럿슴으로 경성부 룡산출댱소에서는 총출동하야 인부를 식히서 막는데 힘을 쓰는 중이며 이 뎨방이 문허지면 룡산 일대는 물에 떠나갈 극히 위험한 상태에 잇슴으로 룡산텰도국에서는 오전 열한시부터 사무를 중지하고 각긔 방수에 노력 중이며 텰도학교 생도도 출동하엿다더라.

逆流(역류) 中(중)에 流屍(유시) 三個(3개)
물은 아래로부터 올러오고 시톄 세 개도 우로 떠올러와
조수가 올라오는 까닭으로 청량리 방면에는 한강물이 역류하야 재목과 가구 등속이 질비하게 떠올라온다는데 작일 오전 아흡시 경에 남자의 시톄 셋이 청량이 텰도다리 밋흐로 떠올라왓다가 어데인지 몰으게 업서젓다는데 청량리(淸凉里)주재소에서는 경관이 출동하야 방금 찾는 종이라더라.
(동부뎐화)

各地(각지) 電信(전신) 故障(고장)
이번 폭우로 인하야 각디의 뎐신선의 고장으로 인하야 통신이 불통되는 곳을 작 십칠일에 두시까지 조사한 바는 아래와 갓더라.

京城(경성)─春川(춘천) ▲京城(경성)─新義州(신의주) ▲京城(경성)─木浦(목포) ▲京城(경성)─元山(원산) ▲京城(경성)─鐵原(철원) 各線(각선) ▲金化華川線(김화화천선) ▲京城(경성)─平壤警備線(평양경비선) ▲京城(경성)─沙里院線(사리원선) ▲大阪(대판)─奉天線(봉천선) ▲春川(춘천)─原州線(원주선) ▲京城(경성)─大邱一番線(대구1번선) ▲京城(경성)─一番線(1번선) ▲京城(경성)─利川線(이천선)

市內電話(시내전화) 故障(고장)
십칠일 오전 아홉시까지 조사한 시내뎐화선의 고장으로 인하야 통화불통은 아래와 갓다더라.
▲本局(본국) 二九件(29건) ▲光化門(광화문) 二七件(27건) ▲龍山(용산) 一四(14)

各地(각지) 交通(교통) 杜絶(두절)
경성 부근 일대
각디의 홍수로 인하야 교통 두절된 곳은 아래 갓다더라.
▲京城(경성)에서 楊平(양평) 龍仁(용인)、利川方面(이천방면) ▲驪州(여주) 高陽郡間(고양군간) ▲漣川(연천)과 各地間(각지간) ▲崇仁面(숭인면) 龍頭里(용두리)와 淸凉里間(청량리간) ▲臨津江(임진강) 沿岸(연안) 一帶(일대) 全部(전부)

鐵道(철도) 被害(피해)
◇馬山線(마산선) 작 십칠일 아츰 락동강(洛東江) 유림뎡(楡林亭) 간의 선로 약 구백간이 끈어저서 불통이 되엿다고.
◇京元線(경원선) 서빙고(西氷庫) 왕십리(徃十里)간 선로에 침수가 되야 교통이 불능하다고.
◇釜山(부산) 馬山間(마산간)은 목하 부산으로부터 하로 세번식 긔선으로 련락을 한다고.
◇沙里院(사리원) 馬洞間(마동간)의 일시 불통되엿든 것은 재직 십륙일 오후 아흡시부터 개통하엿다고.

又復(우복) 襲來(습래)한 沿江(연강) 水害(수해)와
三社(3사) 聯合(연합) 救慰班(구위반) 活動(활동)
本社(본사)는 麻浦(마포) 西江(서강) 孔德里(공덕리) 東幕(동막) 一帶일대)를 擔當(담당)

일전 홍수가 밋처 다 빠지지 안코 놀낸 가슴을 아즉 진정치도 못한 금일에 홍수는 다시 맹렬 한 형세로 한시간 석자세치라는 무셔운 속도로 증수되야 연강 각처는 무서운 위혐에 싸혀 잇슬 뿐 아니라 전조선 각디의 물란리는 실로 희고의 난국이라. 이 중대한 경우에 림하야 묵과할 수 업다는 취지와 다시 응급뎍 구호에 효력을 완전히 하기 위하야 시대(時代) 조션(朝鮮)과 본사(本社)가 협의한 결과 삼사 련합으로 연강 일대의 각기 구역을 담당하야 구호에 종사하기로 되엿는데 시대일보는 이촌동(二村洞) 조선일보는 뚝섬(纛島) 본사는 마포(麻浦) 일대를 중심으로 서강(西江) 공덕리(孔德里) 동막(東幕) 일대를 담당하게 되엿다.





현대



참담한 수재 뒤의 폐허에
다시 엄습한 탁류의 난폭한 위력
상류의 폭우와 하류의 조수로
한강 수위가 1시간에 1m 올라
조수 팽창으로 한강 역류
앞날이 위험한 한강 수위
어제 오후 5시 11.1m

15일 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조금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하늘이 꺼진 것 같이 퍼부어서 이미 물나라를 겪은 경성 일대는 다시 물세례를 받게 되었다. 먼젓번 홍수에 불었던 한강물이 1.2m만 더 줄면 수준점에 이를 만치 되었던 수위가 16일 오후 9시부터 다시 불기 시작하더니 17일 오전 6시경에는 벌써 9m나 불어 동서이촌동과 마포 일대와 뚝섬 앞쪽은 물결치는 붉은 바다로 변하였다. 17일 오후 5시까지 11.2m로 지난번 홍수의 최고 수위 10.7m보다 겨우 0.5m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는 그냥 억수로 퍼부으며 수위 증가는 끔찍하게도 심하여 6시간 동안에 6m나 되어 1시간에 1m의 수위 증가를 보여 장차 어떻게 될는지 연안 일대는 위기일발의 지경에 있다.

마포 일원─마포 부근의 침수가옥은 다음과 같다. 마포 220채, 서강 200채, 공덕리 60채로 피난민은 각각 마포보통학교에 200여명, 마포청년회에 150명, 노동집회소에 약 20명을 수용하였다.

이촌동 방면─불과 6시간 동안에 6m나 물이 불어 한강변 동서부이촌동의 550채는 전부 침수되어 주민들은 17일 오전 6시에 모두 용산 기차 안과 이촌동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양영학교 등지로 피난하였다. 한번 찼던 물이 내려가자 기울어지고 허물어진 집에 흙을 바르고 기둥을 바로 세우던 주민들은 또다시 물난리를 맞아 잠도 못자고 먹지 못하여 여지없이 피곤한 몸들을 이끌어 구제소에 쓰러진 듯이 눠들 있었다. 이촌동 피난민은 8대의 객차에 700명을 수용하였으며 80명은 양영학교에 수용되었다.

뚝섬 일대─지난번 물에 폭 싸였던 뚝섬 일대는 17일 아침까지 1200채가 또 침수되어 인가는 거의 지붕만 내어놓고 가라앉았으며 종묘장의 과실나무도 꼭대기가 뾰죽뾰죽 보일 뿐이다. 이재민 4000여명은 전과 같이 예배당과 보통학교와 면사무소에 수용되었으나 유실가옥도 종종 있어서 이번에는 손해가 대단히 많을 것이라고 한다.

여의도 주민들 위급
식량 떨어졌으나 구제방안은 망연
한강 건너 여의도에는 125채가 있는데 지난번 홍수에도 30채가 침수되었고 그때에도 식량이 떨어져 굶는 사람이 80여명이나 되었다. 15일에 동우구락부에서는 130명에게 쌀 4홉씩 나눠줘 겨우 연명하게 하였는데 이번 비에 또 물에 잠겨 침수가옥이 많을 모양이지만 오갈 수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그들을 신속하게 구제하려면 인천에서 수증기선을 요청하여야 되겠으나 수증기선은 도저히 올라올 수가 없으므로 양군청에서는 구체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용산 시시각각 위험
제방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와
철도국 전날부터 휴업
용산 제방이 거듭 밀려든 물에 매우 위험하게 되었으며 제방 사이로 강물이 숨어 들어오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으므로 경성부 용산출장소에서는 총출동해서 인부를 시켜 막는데 힘을 쓰고 있다. 이 제방이 무너지면 용산 일대는 물에 떠나갈 극히 위험한 상태에 있으므로 용산철도국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사무를 중지하고 각기 방수작업에 노력 중이며 철도학교 학생도 출동하였다고 한다.

역류 중 떠도는 시신 3구
물은 아래로부터 올라오고 시체 3구도 위로 떠올라 와
조수가 올라오는 까닭에 청량리 방면에는 한강물이 역류하여 재목과 가구 등속이 즐비하게 떠올라 온다고 한다. 전날 오전 9시 경 남자 시신 3구가 청량리 철도다리 밑으로 떠올라왔다가 어딘지 모르게 없어졌다고 한다. 청량리 주재소에서는 경관이 출동하여 방금 찾는 중이라고 한다.(동부 전화)

각지 전신 고장
이번 폭우로 인하여 각지의 전신선 고장으로 인하여 통신이 불통되는 곳을 지난 17일 2시까지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경성─춘천 △경성─신의주 △경성─목포 △경성─원산 △경성─철원 각선 △김화─화천선 △경성─평양경비선 △경성─사리원선 △대판─봉천선 △춘천─원주선 △경성─대구 1번선 △경성─1번선 △경성─이천선

시내전화 고장
17일 오전 9시까지 조사한 시내전화선의 고장으로 인하여 통화불통은 다음과 같다.
△본국 29건 △광화문 27건 △용산 14

각지 교통 두절
경성 부근 일대
각지의 홍수로 인하여 교통 두절된 곳은 다음과 같다.
△경성에서 양평 용인、이천방면 △여주 고양군간 △연천과 각지간 △숭인면 용두리와 청량리간 △임진강 연안 일대 전부

철도 피해
◇마산선 전날 17일 아침 낙동강 유림정 간의 선로 약 900간이 끊어져서 불통이 되었다고.
◇경원선 서빙고 왕십리 간 선로에 침수가 되어 교통이 불가능하다고.
◇부산 마산 간은 현재 부산으로부터 하루 세 번씩 기선으로 연락을 한다고.
◇사리원 마동 간 일시 불통되었던 것은 이틀 전인 16일 오후 9시부터 개통하였다고.

또다시 몰려온 한강 연안 수해와
3개사 연합 구위반 활동
본사는 마포 서강 공덕리 동막 일대를 담당

지난번 홍수가 미처 다 빠지지 않고 놀란 가슴을 아직 진정하지도 못한 오늘 홍수는 다시 맹렬한 형세로 1시간에 1m라는 무서운 속도로 수위가 올라가 한강 연안 각 지역은 무서운 위험에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전조선 각지의 물난리는 실로 예전부터 드믄 난국이다. 이 중대한 상황에 닥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취지와 다시 응급 구호의 효력을 완전히 하기 위하여 시대 조선과 본사가 협의한 결과 3개사 연합으로 연안 일대의 각기 구역을 담당하여 구호에 종사하기로 되었다. 시대일보는 이촌동, 조선일보는 뚝섬, 본사는 마포 일대를 중심으로 서강 공덕리 동막 일대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