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유물, 고려바다의 흔적’ 특별전
신안선 목간
20㎝가 채 안되는 나무 조각에 낙서 같은 한자가 적혀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엔 유리 진열장 한가운데 이것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한자들을 다시 읽어본다. ‘지치삼년(至治三年)’. 지치는 원나라의 황제 영종(1303~1323)의 연호다. 지치삼년은 1323년을 뜻한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돼 우리나라 수중 발굴의 시작을 알린 중국 무역선 신안선의 출항 시기를 알려주는 목간(木簡)이다.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에 배의 항해 시기와 목적지, 화물 종류 등을 적은 목간은 수중 유적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다.
‘수중유물, 고려바다의 흔적’ 특별전이 27일부터 인천 연수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선 발굴 이후 45년간 이어온 국내 수중 발굴 성과를 신안선과 고려 선박에서 인양된 수중유물 450여점을 통해 선보인다.
돼지 머리뼈
장기알
주사위
주인에게 닿지 못한 난파선 속 유물도 볼 수 있다. 수중 발굴된 유물의 대부분은 고려청자와 백자 등의 도자기다. 최소 8세기 이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침몰과정에서 바닷물이 완충 역할을 했고 오랜 기간 갯벌에 파묻혀 부식과 바다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청자 매병
이번 전시에서는 2010년 인천 옹진군 섬업벌 해역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의 교역선 영흥도선을 위한 약 6.6㎡ 크기의 별도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영흥도선은 지금까지 발굴된 우리나라 고선박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배다. 이 곳에서는 영상과 바닥에 그려진 실측도를 통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이번 전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중 발굴과 당시 선원들의 선상생활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