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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임기말 40%대 지지율, 자랑거리 아니라 부끄러운 거다

입력 | 2021-07-23 03:00:00

文 높은 지지율, 지지세력 영합 진영정치와 민노총 등 좌파 네트워크 팽창의 결과물
국가 미래 위해 지지층 반발 무릅쓴 DJ, 노무현의 임기말 바닥 지지율이 더 돋보여



이기홍 대기자


문재인 정권 들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최근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최근 보름간 사례 몇 개만 추려봤다.

#사례 ① KDI(한국개발연구원)가 6, 7일 대규모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주제는 ‘문재인 정부 4년의 여정’인데 세션 제목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세션 1-한국판 뉴딜과 ‘미래를 여는 정부’ △2-포용사회와 ‘복지를 확장한 정부’ △3-공정사회와 ‘권력을 개혁한 정부’ △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평화를 유지한 정부’.

복지 개혁 평화 등의 과제들이 다 이뤄졌다고 결론을 지어버린 셈인데, 낯 뜨겁지 않았을까? 설령 문 정부가 그런 업적을 이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를 제목으로 붙인다는 것은 정상적인 염치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국가 최고 싱크탱크 두뇌들의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사례 ② 문 대통령은 20일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군 당국만 질책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유체이탈 화법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는 판단을 못할 정도로 청와대가 정무 감각을 잃은 걸까?

#사례 ③ 정부와 경찰은 역시나 민노총 집회에 이중잣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보수단체나 자영업자 집회 봉쇄와 극명히 대비될 걸 모를 정도로 경찰 수뇌부가 우둔할 걸까?

서로 무관해 보이는 세 사례를 들여다보면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인다.

즉 ‘오로지 지지 세력에만 집중하는 진영정치’의 파생물이라는 점이다. 지지 세력만을 염두에 둔 채, 그들의 머릿속에 ‘성공한 정부’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니 안면몰수하고 용비어천가를 불러댈 수 있다. ‘성공 정권’ 스토리라인의 핵심 소재가 방역이므로 사과는 안 한다. 민노총 같은 핵심 고객을 화나게 할 행동도 결코 안 된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는 임기 말 40%대 지지율의 비밀도 풀린다. 이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 가능하다. 첫째는 지지 세력에 영합해온 진영정치의 효과이고, 둘째는 한국 사회 구성의 변화 덕분이다.

진보좌파 네트워크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민노총은 2016년 65만9000명에서 2019년 105만 명을 넘어섰다. 전교조를 비롯해 거대 노조들의 조직력은 2000년대 초반을 가내수공업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강화됐다.

시민·민주 등의 수식어를 붙인 단체도 급팽창했다. 서울의 경우 2016~2020년 3339곳의 단체가 공모사업 수주, 위탁운영 등 다양한 외피로 7111억 원의 예산을 박원순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았다(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실 자료). 가족까지 합치면 ‘대깨좌’(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좌파정권 지지) 고정표가 수백만은 될 것이다.

집권세력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허구의 성(城)’ 쌓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가공의 시나리오 속에서는 소주성도, 경제도, 외교도 모두 성공작이며, 조국도 한명숙도 김경수도 모두 결백한 희생자다. 지지자들만 그렇게 믿으면 된다.

이를 위해 통계를 화장(化粧)하고, 별자리 잇듯이 유리한 팩트만 갖다 쓴다. 미온적인 통계청장을 바꿔버리고, 정권비리를 파헤치려 한 검사들은 죄다 좌천시킨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 영역의 자율성이 존중돼 왔던 보루 기관들마저 다 망가뜨린다.

‘성공한 정권’ 시나리오의 당초 핵심 소재는 남북 관계였으나 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엉켜버려 이제 남은 유일한 소재는 K방역이다. 청와대가 4차 대감염을 불러온 판단 미스. 백신 부족, 청해부대 집단감염 등 그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오류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의 성공과 안녕이 지지세력 결집에 달려 있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대중은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으로 IMF 이후 기업 경쟁력 회복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를 밀어붙였다.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통령이기에 국가와 미래를 택했다.

문 정권 앞에도 국민연금, 노동시장, 면세 축소, 호봉제 개혁 등 비(非)인기 개혁 과제들이 수두룩했지만 다 팽개쳤다. 남은 임기에도 돈 풀기와 선거 승리용 인프라 구축에만 전념할 태세다. 정연주 씨를 방심위원장으로 밀어붙이고,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조기 교체하려는 것도 그런 일환으로 읽힌다.

통합 대신 지지세력만 바라보고, 나라 곳간과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들을 망가뜨린다면 이는 통치도 정치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한들 역사에선 패자가 될 뿐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