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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실험[이은화의 미술시간]〈172〉

입력 | 2021-07-22 03:00:00

모리스 루이스 ‘감마 감마’, 1960년.


1950년대 미국 화가 모리스 루이스는 새로운 회화 방식과 재료를 실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시 여느 화가들처럼 그 역시 잭슨 폴록이 이룩한 추상표현주의 유산의 계승과 극복에 몰두하고 있었다. 1953년 루이스는 헬렌 프랭컨탈러의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그녀의 물감 얼룩 그림에서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루이스의 대표작 ‘펼쳐진’ 연작 중 하나다. 선명한 색상의 물감들이 캔버스 양옆에서 가운데 아래로 강줄기처럼 흘러내린다. 캔버스는 밑칠도 되지 않았고, 화면 가운데는 텅 비었다. 루이스는 묽은 아크릴 물감을 천에 부은 뒤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캔버스를 움직였다. 화가는 그림 밖에서만 개입할 뿐 화면 안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물감을 흩뿌리는 폴록의 액션페인팅과 다른 점이었다. 새로운 기법은 찾았지만 이번엔 재료가 문제였다. 아크릴 물감을 묽게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루이스는 1958년 대형 물감 회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2년 후 회사는 놀랍게도 루이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아크릴 물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신만의 무기를 손에 넣은 화가는 1960년 ‘펼쳐진’ 연작을 야심 차게 선보였다. 다작주의자답게 이듬해까지 무려 150점을 완성했다. 벽화 크기의 캔버스를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더 나은 작품 구현을 위한 재료의 실험은 계속됐고 루이스는 마치 실험 대상을 분류하듯 작품마다 알파, 감마, 베타, 델타 등 그리스문자 제목을 붙였다.

새로운 재료 실험에 열정을 바쳤던 루이스는 어떻게 됐을까. 얼룩기법 발견 후 9년이 지난 1962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갑작스레 사망한다. 독한 화학용품과 물감 희석제에 과다하게 노출된 결과였다. 비록 50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혁신적인 기법과 실험정신은 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