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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와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움직이는 미술]

입력 | 2021-07-09 03:00:00

데이미언 허스트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년.

송화선 신동아 기자


“당신은 요리를 하고 싶어 했죠.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이 회사에 취업했고요. 꿈을 포기한 대가로 처음 받은 돈이 얼마였습니까?” “2만7000달러요.”

“그때 언제쯤 이 일을 그만두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로 돌아가려 했나요?” “…그거 좋은 질문이군요.”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 앞에는 근사한 슈트를 차려 입은 조지 클루니(라이언 역)가 앉아 있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이다. 라이언의 직업은 ‘경력 전환 상담사’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해고 청부업자’라 할 수 있다. 라이언은 자기 직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직원에게 직접 해고를 통보할 배짱조차 없는 상사를 대신해 사람을 잘라주는 일.”

그는 이 일을 하느라 1년에 300일 넘게 비행기를 탄다. 월요일엔 시카고, 화요일엔 디트로이트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앉아 이렇게 말하는 거다. “오늘은 당신이 이 회사에 다니는 마지막 날입니다.”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이 침착할 리 없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화내고, 심지어 “그렇다면 나는 다리에서 뛰어내려 죽는 수밖에 없겠군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 앞에서 라이언은 ‘꿈’에 대해 말한다. “평생 한 회사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하며 살고 싶었어요? 아니잖아요. 변화가 두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당신 앞에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라이언의 직업이 공식적으로 ‘경력 전환 상담사’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실직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다독이며 “지금이 새로운 경력을 시작할 때”라고 속삭인다. 이런 말도 한다. “느리게 움직일수록 더 빨리 죽게 됩니다. 우리는 상어거든요. 계속 움직여야 해요.”

클루니는 이 대목에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다. 마치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그의 자기 확신이 가득한 눈빛을 보다 문득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그 유명한 상어 작품이 떠올랐다. 허스트는 1991년, 길이 4m가 넘는 대형 상어를 소독액에 ‘절인’ 뒤 투명 유리 상자에 넣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가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 이름 붙인 이 작품은 공개 즉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허스트는 일약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이름이 또 한 번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 건 얼마 뒤. 죽음의 이미지를 박제한 듯 보인 그 상어가 실은 소독액 안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던 게 드러나서다. 작품을 갖고 있던 갤러리는 상어를 유리 상자 밖으로 끄집어내 내장을 제거한 뒤 껍데기만 다른 틀에 씌워 전시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라이언의 말은 어쩌면 사실인지 모른다. 심지어 이미 죽은 상어조차,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채 또 한 번 죽었다. 그러니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이제 그만 떠나라”고 명하면 우리는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한 채 끝없이 유영하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그 안에서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송화선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