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피의자인 공군 장모 중사(가운데 전투복 차림)가 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2021.6.2/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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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사건과 관련해 군 수사당국의 초동 수사 과정에서 사건 축소·은폐를 시도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재 이 사건 수사는 서욱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검찰단에 “철저 수사”를 지시한 지 하루 만인 2일 피의자 장모 중사가 법정 구속되면서 뒤늦게나마 속도가 붙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
그러나 처음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공군 측의 보고 자료 등에선 피해자 이모 중사가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처음 신고했을 때부터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약 3개월 간 공군 당국이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거나 피해자인 이 중사를 배려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실들 또한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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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이 중사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충남 서산)에서 근무하던 지난 3월2일 피의자인 같은 부대 선임 장 중사와 함께 저녁 회식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돌아가던 중 함께 탄 차량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당시 이 중사가 곧바로 차량에서 내려 회식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같은 부대 A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공군 측 자료엔 이 중사가 ‘성폭력 사건’ 발생을 신고한 시점이 하루 뒤인 3월3일로 돼 있다. 이 중사가 3일 오전 A상사에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고했고, A상사 또한 이를 즉각 B준위에게 보고했다는 게 공군 측 설명이다. 그러나 B준위가 부대 지휘관(대대장)에게 이 사건을 전화로 보고한 시점은 오전이 아닌 오후 9시50분쯤이었다.
이와 관련 유족 측은 “대대장에게 사건이 보고되기까지 10여시간 동안 이 중사가 A상사·B준위 등으로부터 사건 무마를 위한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유족 측에 따르면 B준위의 경우 3월3일 이 중사를 저녁자리에 불러내 “(장 중사 건은) 살면서 한번쯤은 겪는 일”이란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군 군사경찰은 3월5일 실시한 피해자(이 중사) 조사와 같은 달 17일 가해자(장 중사) 조사에 이어 이 중사 사망 뒤인 지난달 24일 다른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B준위의 ‘늦장 보고’ 및 ‘사건 무마 시도’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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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음성 파일 확보하고도 “도주 우려 없다” 불구속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이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연현실에 놓여 있다. 2021.6.2/뉴스1 © News1
C하사의 경우 군사경찰 조사과정에서 장 중사의 성추행 여부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족 측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중사가 성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차량 블랙박스 파일을 확보해 직접 군사경찰에 제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유족 측에 따르면 해당 파일엔 “이러지 말라”며 장 중사로부터의 신체 접촉 등에 항의하며 이를 저지하는 이 중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유족 측은 해당 파일이 장 중사의 성추행 사실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라고 판단해 장 중사에 대한 구속 수사를 기대했지만, 공군은 “장 중사가 부대 영내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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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해자 분리’ 등 성폭력 대응 매뉴얼도 안 지켜져
게다가 공군은 이 중사의 신고 뒤에도 가해자인 장 중사와의 ‘분리’ 조치를 즉각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군 측 자료엔 사건 신고 다음날인 3월4일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를 취했다고 명기돼 있으나, 장 중사가 ‘파견’ 형식을 빌어 20전투비행단에서도 제5공중기동비행단(경남 김해)으로 옮긴 건 가해자 조사를 받은 3월17일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중사가 사건 발생 뒤 청원휴가(3월4일~5월2일) 냈기에 장 중사와의 불필요한 접촉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일 뿐, 군이 적극적으로 피·가해자 분리조치를 취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중사는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되기에 앞서 자발적으로 전속 요청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도 3일 브리핑에서 성폭력 피해 발생시 피·가해자 분리 등 “대응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군 검찰과 감사관실·조사본부를 통해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망 후엔 ‘성폭력’ 관련 내용 쏙 빼고 국방부 보고
공군의 ‘이상한’ 대응은 이 중사 사망 뒤에도 계속됐다. 이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공군 군사경찰이 국방부에 보고한 사건 보고서엔 시신 발견 경위와 현장감시 결과 등에 대한 내용만 담겨 있었고, 그의 성추행 피해 등은 기재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 대변인 또한 “(국방부에 대한) 최초 보고엔 성추행 사건과 연계된 내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에서 성폭력 사건과 연관된 사람이 숨졌을 땐 반드시 관련 보고서에 해당 내용을 기재토록 돼 있으나, 이 중사 사망 건과 관련해선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윤석 공군 서울공보팀장은 공군의 이 중사 사건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문제점들에 대한 질문에 “수사를 통해 밝혀질 부분들”이라면서 “공군은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되는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