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올해 9월 11일을 기한으로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진행하는 가운데 탈레반 세력에 맞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현지인들의 신변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뒤 탈레반이 권력을 잡으면 미군에게 협력했던 현지인들을 색출해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지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자국군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 등 현지인들이 더 많이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영국 정착 허가를 받은 1300명에 더해, 최소 3000명을 추가로 허가한다.
그동안 영국은 현지인이 조력을 제공한 기간과 역할을 엄격히 따져 순위를 매긴 뒤 정착을 허가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발표한 뒤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지며 현지인 조력자들에 대한 신변 위협도 커졌다. 때문에 영국은 이들의 활동 기간, 역할의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바꿨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의 보복으로부터 이들을 지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 아프간 조력자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BBC는 미국 특별이민비자 제도(SIV)에 따라 비자를 신청한 아프간인이 1만8000명에 달한다고 지난달 31일 전했다. 미군을 도와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데 도움을 준 이들과 그의 가족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FP는 미국이 비자를 부여하고 이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까지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주간 타임지는 1만8000명 이상의 아프간인들이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으며 평균 가족 수는 4명이라고 전했다. 원칙적으로 9개월 내 비자가 발급돼야 하지만 대부분 최소 4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지 등 외신에 따르면 올 1월 미군 통역을 담당한 아프간 통역사가 10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탈레반에 살해당했다. 그는 미국의 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압둘’이라 불리는 다른 통역사는 자신의 동료 12명이 탈레반에 납치,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미국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부됐고 현재 탈레반에 포로로 잡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간을 공격하면서 내건 작전명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였다. 20년이 지난 현재 미군이 철수를 서두르면서 아프간의 안전과 자유는 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다.
광고 로드중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