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 감로탱. 1730년(영조 6년) 비단에 채색한 작품으로 도상의 배열과 화면의 구성이 조화를 잘 이루었으며 화면 속 다양한 인물과 필치가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화승의 우두머리가 전체 구도와 도상을 배열하면 나머지 승려들이 채색 등을 전담해 분업한 집단 창작 작품이다. 경남 고성군 운흥사 소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코로나바이러스는 현재 3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1억6000만 명 이상의 확진자를 만들어 고통의 늪에 빠지게 했다. 백신이 개발되어 효과를 기대하게도 하지만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탐욕의 인간에게 내린 벌일까. 지구를 못살게 한 죄, 자연을 맘대로 파괴한 죄. 이들 인간들에게 부끄러움을 알라면서 얼굴을 가리게 했다. 바로 복면시대다. 과연 바이러스의 노여움은 언제 풀어질까.
재난 시대에 특이한 그림이 떠오른다. 감로도(甘露圖). 달콤한 이슬, 이를 대작으로 표현한 채색 불화다.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존재들을 위한 그림이다. 위무(慰撫) 목적의 그림, 이 얼마나 멋있는가. 게다가 감로도는 조선 후기의 독창적 화풍으로 우리 미술사를 빛내주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감로도는 50여 점이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은 18세기에 제작되었다.
감로도에서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인간사회의 다양한 현실 풍경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하단이다. 일하는 장면부터 놀이하는 장면 등 다양하다. 그런데 죽음의 표현이 많다. 다량의 전사자를 내는 전쟁을 비롯해, 특히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많다. 호랑이나 뱀에게 물려 죽거나 번개 맞아 죽는 등 억울하게 죽는 모습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동시대 풍경화.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서울 정릉의 흥천사 감로도(1939년)는 현실 풍경이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재판소, 터널의 기차, 종로거리 전차, 전당포, 코끼리 서커스, 양장 차림의 신여성 등 동시대의 풍경을 담았다. 사찰의 불화 속에 동시대의 풍경이 사진 찍듯 표현되었다는 점, 정말 흥미롭다.
물론 감로도의 회화사적 특징은 한 화면에 구획지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는 점이다. 이렇듯 서사적 전개 형식은 눈여겨볼 만한 표현 기법이다. 요즘 말로 스토리텔링이 압권이다. 구름이나 나무 같은 것으로 경계를 이루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결시켰다는 점, 이런 전통은 되살릴 만하다.
조선 후기에 감로도가 왜 유행했을까. 역설적으로 그만큼 살기 어려웠다는 의미이리라. 굶어 죽거나 비명횡사한 고혼(孤魂),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그림. 그런 감로도가 많이 그려졌다는 의미는 그 시대가 그만큼 살기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감로도 가운데 나의 눈길을 크게 끄는 작품은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 작품이다. 운흥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의 본거지로 유명한 사찰이다. 전쟁으로 절은 불탔고,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그래서 영혼을 위로해줄 감로도가 절실했다.
운흥사 감로도의 특징은 망령 표현이다. 주인공의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의 모습을 나란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생사 동시 표현. 세상에, 이런 그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전의 모습은 채색으로 멋있게 그렸고, 사후 모습은 검은 먹선으로 작게 그렸다.
예컨대 깃발을 들고 행렬을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곧 죽었고 그의 혼은 옆에 검은 먹으로 작게 표현했다. 줄타기꾼도 있다. 그는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다 떨어져 죽었다. 살아서 곡예하는 모습과 죽은 모습, 동시 표현이다. 이런 형식으로 칼싸움이거나 말 탄 기수이거나 다양한 사람들의 생사가 묘사되었다. 수묵 몰골(沒骨) 형식의 망령 표현. 정말 흥미롭다. 재난의 사실적 표현.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주기 위한 광경. 정말 흥미로운 회화 형식이다. 동시대의 현실 풍경을 사실적으로 불화에 표현했다는 점도 커다란 특징이다.
코로나19의 재난시대다. 고통 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불어 무주고혼(無主孤魂)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 가운데 하나, 바로 현대판 ‘감로’다. 재난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 그리고 치유의 마음. 미술가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땅에 달콤한 이슬이 듬뿍 뿌려지기를 빌 따름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