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송전 합의 막전막후 바이든 거부권 행사 시한 직전 캐서린 타이 USTR 대표가 중재 LG-SK, 소송 장기화 부담 느껴 한국 정부의 합의 촉구도 한몫… 바이든 “美노동자-車산업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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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을 걷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최종 합의는 11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비토권(거부권) 마감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이뤄졌다.
합의의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미국 바이든 정부였다. 거부권 시한이 다가오면서 고위 당국자들이 양사 임원들을 직접 접촉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 시간 9일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을 화상회의로 만나 양사를 설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USTR와의 3자 회의 이후 양측 사장들이 화상으로 만나 결국 최종 합의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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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공장 문을 닫고 최대 6000여 개 일자리를 잃어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다. 오랜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블루 웨이브’로 불리는 민주당 지지 바람을 타면서 신(新)경합주로 분류된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정부가 적극 설득에 나서자 양사가 더는 소모전을 펼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전격 합의를 결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가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며 “내 플랜의 핵심은 미래 전기 자동차 및 배터리를 미국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중심의 강력한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필요로 하며 오늘 합의는 이 같은 방향에 맞는 긍정적인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스콧 키오 폭스바겐 미국지사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배터리 생산 능력 감소 및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다. 폭스바겐은 LG와 SK가 주로 만드는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중국 CATL이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쓰겠다고 선언하면서 두 회사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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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로 양사는 장기소송 리스크 등에서 벗어나 시장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이번 합의 결과를 두고 미래 첨단 산업에서 국가 안보를 내세운 미국 정부의 입김이 강해지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는 12일(현지 시간) 백악관 반도체 긴급대책 회의를 열어 삼성전자를 비롯해 19개 글로벌 업체와 반도체 공급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첨단 산업을 안보 이슈로 보면서 한국 반도체, 배터리 기업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