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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딘의 교향곡 2번은 어쩌면 ‘명절날 칼국수’ 같은 작품입니다. 보로딘은 야심찬 대작 오페라 ‘이고리 공’을 쓰고 있었습니다. 12세기 러시아 제후 이고리 스뱌토슬라비치의 중앙아시아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커졌고, 보로딘은 이 오페라에 넣지 못한 선율과 소재들을 따로 교향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2번입니다.
보로딘은 이른바 러시아 민족주의 5인조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죠. 러시아라고 하면 흔히 추운 북방, 하얀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보로딘의 음악들은 다릅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을 보면 여기 나오는 풍경은 자작나무 숲이 있는 북방의 러시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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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딘이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그린 게 이 곡만은 아닙니다.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서 보로딘은 낙타를 탄 대상(隊商·캐러반)이 초원을 줄지어 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남쪽의 초원지대를 묘사한 음악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는 남쪽 초원지대의 이슬람 지역과 투르크계 민족이 사는 땅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캅카스 지역과 구소련의 ‘스탄’ 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나라들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온 보로딘의 ‘이고리 공’이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는 남쪽으로 계속 시선을 확장하던 러시아의 야망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적인 야망이죠. 하지만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한 시대나 한 국가가 가진 꿈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도 투사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은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보로딘은 이 대작을 끝내지 못한 채 18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오페라를 완성하는 작업은 친구 작곡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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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불과 얼음의 여행’ 콘서트에서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합니다. 스페인 지휘자 프란시스코 발레로테리바스가 지휘봉을 들고, 기타리스트 박종호는 스페인 작곡가 팔라우의 ‘레반티노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중앙아시아 초원과 스페인이라는 두 가지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는 콘서트가 되겠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