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총선압승으로 국정운영 일방통행 가속화 ‘다수의 폭주’ 절제 못 하면 민심회복 어려워
정연욱 논설위원
당시 현장에 없었던 김 의장 대신 국회부의장 오세응이 개회를 선언했고 노동법 등 11개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오 부의장이 의사봉을 48번 두드리는 동안 여당 의원들은 여섯 차례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법안 통과에 걸린 시간은 7분도 채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을 버스로 실어 나른 희대의 법안 날치기가 군부정권도 아니고, 문민정부를 자랑하던 김영삼(YS) 정권에서 벌어진 것은 충격이었다. 복수노조 3년 유예를 골자로 한 노동법 날치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이듬해 한보 비리 사건까지 겹치면서 기세등등하던 YS정권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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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복도 있었다. 야당의 유력 주자였던 김대중(DJ)은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20억 원+α’ 논란에 휩싸였다. YS 청와대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해보니 여당의 대선후보 누구를 내세워도 DJ를 이길 수 있었다”고 호언장담했다. 정권 내부의 절제나 야당의 견제는 씨알도 먹힐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세월은 20여 년이 지났건만 권력의 작동 방식은 변한 게 거의 없는 듯하다. 집권 4년 차에 거둔 총선 승리, 개헌만 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180석 확보. 여전히 탄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야당…. 여권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거침없이 일방통행 했다. 전례 없는 18개 국회 상임위원장 싹쓸이에, 최소한의 심사절차도 개의치 않은 채 사실상 ‘날치기’나 다름없는 법안처리를 강행했다. ‘원팀(one team)’을 외치면서 당내 이견이나 문제 제기는 용납하지 않았다. 여권 수뇌부가 역설한 ‘국민’은 철저하게 강경한 친문 세력이었지, 대다수 국민은 아니었다.
정책 실패와 관련해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될 때마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백신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었다” “서울동부구치소 특별점검을 수차례 지시했었다”는 뒷북 브리핑만 하고 있다. 대통령은 지시를 했으니 책임은 없다는 면피용 해명일 뿐이다. “중대한 재난·재해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라는 자세를 갖고 임하라”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는 생색용이었나.
집권 5년 차 벽두에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정권을 향한 민심의 경고로 집약되고 있다. 그러나 여권의 대응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년 내내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벌였던 검찰개혁 드라이브는 오히려 ‘시즌2’로 강화됐다. 이미 시장에서 실패 낙인이 찍힌 부동산대책도 정책 수정은 없다고 한다. 지난 연말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몇 명만 바뀌었을 뿐, 국정 기조는 흔들림 없다는 메시지다. 압도적인 의석수를 버팀목으로 삼고 있겠지만 민심을 업지 못하면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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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