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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짜리 딸은 아버지의 지시대로 옆에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제판기를 이용해 아연판에 점자를 새겼다. 그런데 아이가 읽어주는 성경은 쪽복음, 즉 권별로 분리된 휴대용 성경이어서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행을 바꿔 읽을 때 같은 줄을 또 읽거나 한 줄을 건너뛰고 읽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연판으로 딸의 머리를 내리쳤다. 딸은 서러웠다.
한글 점자를 만든 송암(松庵) 박두성이 그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딸보다 점자가 먼저였을까. 하기야 일제강점기에 한글 점자를 만들어 장애인 교육에 헌신하는 일은 어지간한 결기로는 안 될 일이었다. 장애인학교 교사였던 그는 제자들을 규합해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점자를 만들어 1926년 11월 4일 발표했다. 총독부는 한글 점자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시각장애인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 삼중의 “정서불안, 열등감, 비사회적 행동의 부차적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그는 위원회의 이름을 육화사(六花社)로 바꿨다. 점자가 여섯 점이고, 사물을 보는 눈과 발음이 같은 눈(雪)의 결정이 육각형이어서 붙인 이름이었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겠다는 눈꽃 같은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 그는 장애인 교육에 헌신했다. 한글 점자 책을 200여 종이나 만들어 보급하고 통신 교육으로까지 확대했다. 이십 년 가까이 점자를 찍느라 시력은 극도로 나빠지고 눈동자는 회색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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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