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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공수사권[횡설수설/이태훈]

입력 | 2020-11-28 03:00:00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2011년 5월 사살할 수 있었던 것은 약 10년에 걸친 미 중앙정보국(CIA)의 끈질긴 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9·11 직후부터 중동에서 빈라덴을 추적한 CIA는 사살하기 9개월 전쯤 빈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 주변에 안가를 얻어 작전을 준비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아낸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도 3년에 걸친 치밀한 내사의 산물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내부 조력자를 통해 비밀회합 녹취 파일을 확보해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노린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수집’을 삭제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없애면 해외 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기관이 된다. 1961년 김종필 주도로 중앙정보부를 처음 설립할 때 대공수사권을 부여했던 것은 남북 대치 상황을 고려해 미 CIA와 연방수사국(FBI)의 기능을 합친 정보기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는 대공수사국이 맡아왔는데 내란, 외환죄, 반란죄 같은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범죄가 대상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사건은 다 경찰의 몫이 된다. 그런데 기능만 이관하고 국정원의 대공 수사 인력은 그대로 국정원에 남아 다른 부서로 재배치된다고 한다. 전문 인력이 경찰로 이동하지 않을 경우 수십 년간 국정원이 쌓아온 대공수사 노하우와 전문성이 사장(死藏)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신설된 경제 질서 교란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에 대공수사 잉여 인력이 배치돼 경제 사찰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스파이 수사는 종전대로 국정원이 계속 맡는다.

▷경찰은 경찰청 보안국을 가칭 ‘안보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해 일반 수사를 총괄할 국가수사본부와 양립시킨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의욕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지만 사람과 노하우는 넘어오지 않아 자칫 조직과 권한만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공자가 잘하는 일을 비전공자에게 맡기는 것은 비정상이다. 국정원은 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고, 휴민트라 불리는 해외 인적 정보망도 풍부하다. 세계 각국은 지금 앞다퉈 정보 예산을 늘리며 정보전을 강화하고 있다. 대공수사권 폐지라는 큰 변화를 추진하려면 그 과정에서 빚어질 빈틈과 부작용을 보완할 치밀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개혁이란 미명 아래 없애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