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부총리마저 뒷돈 거래, 임대차법 이대로 둘 텐가[광화문에서/정임수]

입력 | 2020-11-02 03:00:00

정임수 경제부 차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년간 보유한 경기 의왕시 아파트를 팔기 위해 꺼내든 해결책은 세입자 위로금이었다.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이 있는 홍 부총리는 2주택자 꼬리표를 떼려고 8월 초 의왕 아파트를 9억2000만 원에 파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기존 세입자가 돌연 2년 더 살겠다며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매각이 불발될 처지에 놓였다. 결국 홍 부총리는 이사비 명목의 위로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기로 했다.

7월 31일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등장한 뒷돈 거래에 경제부총리가 가세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는 “위로금이 ‘국룰(국민 룰)’이 되겠다”, “차라리 표준 위로금을 법으로 정해 달라”는 성토 글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포기하고 집을 비워주는 대가로 이사비, 위로금을 요구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몇백만 원부터 많게는 5000만 원을 웃돈다.

새 임대차법 시행 3개월 만에 전세시장은 매물이 사라지고 가격이 폭등한 것을 넘어 온갖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 씨가 마른 전세 매물을 먼저 잡으려고 세입자가 중개업자에게 ‘급행료’라는 웃돈을 얹어주는 일이 늘었다. 집주인이 ‘갑’인 곳에서는 법정 상한인 5%만 전세금을 올린 것처럼 계약서를 쓴 뒤 나중에 보증금을 적게 돌려받기로 이면계약을 하는 꼼수 거래까지 생겼다.

이 같은 ‘전세 아노미’는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부터 예견됐다. 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다주택자와 갭투자를 규제해 전세시장의 주된 공급원을 차단했다. 세금, 대출, 재건축 규제로 실거주를 강화해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게 만들었다. 금리는 바닥인데 껑충 뛴 보유세를 내려고 전세를 월세로 돌린 집주인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졸속 강행한 임대차법은 안 그래도 들끓는 전세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한국감정원 통계로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월 마지막 주에 0.22% 올랐다. 5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전세 공급 부족을 보여주는 지표(KB국민은행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나빴다.

이래 놓고 정부나 여당에선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으니 집주인이고, 세입자고 분통이 터질 만하다. 성난 민심에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같은 날 홍 부총리는 부동산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전세시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의 안정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겠다”는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내놨다.

홍 부총리는 앞서 국정감사에서 “과거 10년간의 전세대책을 다 검토해봤다. 뾰족한 단기 대책이 별로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임대차법이 전세대란의 도화선이 됐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원인과 답을 찾으려고 하니 신통한 방책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현재의 상황을 법 시행에 따른 과도기로 치부하기엔 혼란이 너무 크다. 문제의 근원인 임대차법을 지금이라도 수정해 전세 수급과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세지옥에 시달리는 서민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