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의 전설’ 한대수
27일 서울 신촌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한대수. 다음 달 낼 15집에 ‘하늘 위로 구름 따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진기자 출신인 그는 “1960, 70년대 서울과 뉴욕, 박정희와 히피 시대를 담은 필름 300만 통을 인화해 정리하는 것도 ‘하늘 위로 구름 따라’ 가기 전에 내가 해둘 일”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모래알 한 줌 삼킨 듯 서걱대는 목소리, 경상도 사투리.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의 카페가 시끄럽다. 그 목소리 위로 ‘호치민’(2002년 곡)의 메탈 기타 폭탄이라도 어디서 쏟아질 듯. 한대수(72)가 돌아왔다. 4년 전 태평양을 건넌 포크 록 가수가 자신의 마지막 앨범(다음 달 25일 발매)을 녹음하러.
“더 이상 창의적인 게 안 나올 것 같아서요. 제가 존경하는 베(토벤) 선생님, 바(흐) 선생님도 좋은 심포니를 9번, 10번 만든 게 다잖아요. 신작 제목은 ‘하늘 위로 구름 따라’로 정했어요. 마지막이란 의미죠. 제 옛 노래 ‘바람과 나’의 가사에서 뽑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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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 학교 보내고 장 보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월세 낼 돈이 궁하면 이삿짐 나르기나 페인트칠 같은 육체노동도 좀 했지요. 이제 5년만 버티면 양호가 18세, 성인이 되니까, 그땐 (한국에) 돌아와야죠.”
몇 마디 풀다 영 더운 듯 두꺼운 재킷을 벗어던졌다. 민소매에 가까운 ‘비틀스’ 반팔 티 차림이다. 이보다 더 건강해 보일 수가 없다.
“사실 작년에 폐허탈증이 와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양호가 911을 조금만 늦게 불렀어도 (저세상으로) 갔을지 몰라요.”
의사가 “살고 싶냐” 물었다고. “우리 딸 열여덟 될 때까지는 살아야 됩니다”고 답하자 “오늘부터 금연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50년간 피운 줄담배를 그는 1년 4개월째 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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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종로구 ‘오디오가이’ 앞에서 딸 양호 양(왼쪽)과 함께한 한대수. 조상호 작가 제공
“가장 행복할 때 만든 앨범이 옥사나와 재혼하고 낸 8집 ‘Eternal Sorrow’(2000년)였는데 그것도 앨범 제목이 저렇고 표지에는 내가 울고 있고….”
어린 시절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부모의 애정을 갈구했지만 늘 외로웠던 트라우마는 이렇게 노년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죽어도 열여덟까지는 양호와 붙어 있겠다”는 ‘할배’ 아빠의 결기도 거기서 나온다.
‘Money Honey’는 ‘돈 없어 결혼하기 힘들다’는 청년들의 넋두리를 듣다 나온 곡. ‘마스크를 쓰세요’는 ‘신혼부부도, 강아지도 마스크 쓰세요’ 하는 가사를 미국 고전 포크송 형식에 담은 노래다. 한대수식의 쓰디쓴 풍자와 블랙유머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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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에는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하루아침’ 등 대표곡을 아방가르드 재즈나 포크 스타일로 재편곡한 것도 담는다.
“요즘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두아 리파도 아주 좋아요. 천재들이죠. 그러나 컴퓨터 음악은 어쩐지 썰퍼요(슬퍼요). 외롭잖아요.”
다음 달 말쯤 양호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어쩌면 5년 뒤 다시 만날 것이다.
“양호 대학 보내고 나면 이 할배, 신촌 바닥을 지팽이 짚고 돌아다닐 거예요. 그때도 만나줘야 돼. 알았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