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으로 보기 드문 만수 연출 바닥에 퇴적층 형성, 담수 유지 못해 제주도, 백록담 수위변화 모니터링 담수보유능력 규명-육지화 대비 나서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찬 만수의 장관을 보인 뒤 34일 만에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시간 순으로 정리한 경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9월 8일, 18일, 30일, 10월 12일 모습이다. 물이 바닥까지 빠지는 동안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서 풍경도 변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9호 태풍 ‘마이삭’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지난달 2일부터 7일까지 한라산 백록담 남벽 일대 누적 강우량이 1476mm를 기록하며 최근 보기 드문 만수의 장관이 펼쳐졌다.
태풍이 지나간 뒤 비가 오락가락하며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한라산 정상 부근 누적 강우량은 약 200mm를 기록했다. 만수의 장관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강우량이다. 이런 강우량을 감안해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하루 강우량이 47mm 미만일 때 백록담이 바닥을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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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담수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그동안 담수 보존을 위한 용역이 두 차례 있었다. 1993년 ‘한라산 백록담 담수적량 보존 용역’에서 백록담 바닥을 통해 담수의 98%가 새나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용역보고서는 누수 방지를 위해 백록담 하부에 30cm 두께로 차수막을 설치하는 특수 공법을 제시했다가 환경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5년 ‘한라산 백록담 담수 보전 및 암벽 붕괴 방지 방안’ 용역에서는 분화구 사면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린 토사가 물을 빨아들이면서 담수 깊이를 얕게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토사를 걷어내 훼손된 사면을 복구하는 사업이 제시됐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산 정상에 바가지처럼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인 모습은 조선시대 관료들에게도 경이롭게 보였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분화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당시 담수 깊이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 중기 문신인 김상헌(1570∼1652)은 1601년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간 것을 기록한 책에서 “백록담의 깊이가 얕은 곳은 종아리 정도 빠지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만 빠진다”고 했다.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1653∼1733)은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한라산 백록담에 대해 “물이 불어도 항상 차지 않는데 원천이 없는 물이 고여 못이 됐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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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고석형 박사는 “올해부터 10년 동안 백록담 수위 변화 모니터링을 추진한다”며 “백록담 담수의 수위 변화, 증발산량, 토사 퇴적 양상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 담수 보유 능력을 규명하고 화구호의 육지화에 대비한 자료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