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동 이대서울병원에 박물관 개관
‘보구녀관 복원 프로젝트’를 총괄한 유경하 이화의료원장은 16일 인터뷰에서 “이화의료원 구성원 모두가 보구녀관의 역사를 배우고 정신을 이어나가는 데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구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의사, 교사, 자금을 필요로 하는 이곳을 지원해줄 것이라는 응답을 간절히 원합니다.’
● 133년 만에 복원된 조선 첫 여성병원
스크랜턴 여사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생기면서 1887년 10월 조선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이 설립됐다. 고종 황제는 이 병원의 이름을 보구녀관(普救女館)이라고 지었다. ‘여성을 널리 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보구녀관은 영어로는 ‘House for Many Sick Women’(많은 아픈 여성들을 위한 집)이라 불렸다.
132m² 크기 지상 1층 한옥인 보구녀관은 지난해 새로 개원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대서울병원 앞뜰에 세워졌다. 134년 전 그대로 대기실, 진료실, 약국, 수술실 등 7칸의 방으로 되어 있다. 이 한옥 박물관에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이자 최초의 여의사, 간호사를 배출한 보구녀관과 한국 여성 의료사에 관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유경하 이화의료원장은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했을 정도로 여성 인권이 처참하던 당시 보구녀관은 아픈 여성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여성의 ‘진료권’을 확보했다”며 “이대서울병원 옆에 보구녀관을 복원하게 된 건 소외된 이들을 돌보았던 이화의료원의 뿌리를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33세 요절’ 1호 女의사 박에스더 배출
134년 전 서울 정동길 덕수궁 부근에 있었던 보구녀관(왼쪽)이 지난해 새롭게 복원된 모습(오른쪽). 이화의료원은 이대서울병원을 새롭게 개원하면서 전신인 보구녀관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2016년 보구녀관 복원 프로젝트에 착수해 지난해 6월 완공했다. 이화의료원 제공
보구녀관은 아픈 여성을 위한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이면서 여성 의료진을 양성한 최초의 여성의학교육기관이기도 했다. 로제타 홀 여사는 보구녀관 병원장 재직 당시인 1890년 이화학당 학생 중 5명을 선발해 약물학과 생리학 등을 교육시켰다. 당시 교육생 중에는 1900년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해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된 박에스더와 한국 최초의 간호사 이그레이스 등이 있었다.
유 원장은 “박에스더는 이화의료원 역사를 넘어 한국 의료계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며 “이화의료원 의료진도 주 6일 진료를 하며 1년 평균 3200명의 환자를 돌보다 요절한 그를 본받아 환자를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외된 이들 돌본 보구녀관 정신 계승”
이화의료원은 보구녀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상대적인 의료기관 사각지대인 서울 서남권에 지난해 이대서울병원을 새로 개원했다. 또 낮은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병동을 만들 예정이다. 이화의료원은 광복 직후 시작된 무의촌의료봉사와 함께 네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을 중심으로 35년째 이어온 해외 의료봉사도 진행 중이다.
유 원장은 “134년 전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랑과 헌신을 보내준 의료 선교사들이 있었다”며 “소외 계층을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보다 완벽한 의료를 제공해 보구녀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