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엄마, 난 민달팽이야” 은둔형 외톨이에 가장 필요한건…[박성민의 더블케어]

입력 | 2020-09-03 14:00:00



김정인 씨(가명·28·여)는 10년차 ‘은둔형 외톨이’다. 세상과 등지고 살아온 시간이다. 그렇게 만든 건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사업 실패 후 수년 간 빚쟁이에게 쫓겨 다녔던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다. 김 씨는 그럴 때마다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의 유일한 은신처였다. 한 번 멈춘 일상은 다시 제 속도를 찾지 못했다. 무단결석을 반복하다 끝내 학교도 관뒀다. 오랜 은둔 생활로 건강도 잃었다. 근육 손실이 심해져 한동안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버거웠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K2인터내셔널이 주최한 ‘은둔고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고립 청년들이 자신의 은둔 경험을 나누고 있다. ‘은둔고수’는 한 달 동안 상담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또래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가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몸은 방안에 갇혔지만 김 씨는 10년 내내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버리진 않았다. 그러나 방법을 몰랐다. 김 씨는 “누군가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가보자, 상담을 받자’고 해줬으면 은둔이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김 씨는 최근 여행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 밖으로 나가고 싶은 외톨이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흔한 편견 중 하나는 자립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회 부적응’ ‘자발적 고립’ 같은 부정적인 꼬리표도 따라 붙는다. 그러나 실제론 김 씨처럼 세상에 발 디딜 방법을 모르거나, 끊임없이 구조요청을 보내는 데도 주위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윤철경 GL학교밖청소년연구소장은 최근 은둔형 외톨이 125명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다. 응답자들이 가장 원한 건 ‘현 상태에 대한 진단과 치료(67%)’였다. 61%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은둔 극복을 위한 지식과 정보(56%),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의 교류(43%) 등이 뒤를 이었다. 38%는 시설에 입소해서라도 상태가 회복되기를 희망했다. 방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고립 청년의 수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를 돕는 데 소극적이다. 공식적인 정부 통계조차 없다. 다만 2017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15~39세의 약 4.2%가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과 출산, 장애 등을 제외하고 스스로 은둔을 택한 경우로 한정하면 0.91%. 해당 연령대의 주민등록 인구를 대입하면 13만50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숫자다. 외부 노출을 꺼리는 은둔형 외톨이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실제 규모는 20만~30만 명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한 정책을 찾기 어렵다. 학교 밖 청소년 문제인지, 청년 일자리 문제로 봐야할지,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풀어야할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은둔형 외톨이를 청년 문제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 정책의 초점은 대부분 대졸 실업자에게 맞춰져 있다. 그나마 일하지 않거나 일할 의지가 없는 ‘니트(NEET)족’에 관심을 갖는 정도다. 이들보다 더 깊게 고립된 은둔형 외톨이들은 정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윤 소장은 “일반적인 실업 청년들은 찾아내는 것도, 구직으로 연결시켜 성과를 내기도 쉽다. 그런데 은둔형 외톨이들은 발굴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성과를 낼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으니 정부나 사회의 관심이 적다는 의미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은둔형 외톨이의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보다 일찍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나타난 일본은 40~64세 은둔 인구가 약 61만3000명(2019년 조사)으로 추산된다. 전체 규모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모든 현(縣)에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다. 정신건강 관리부터 구직 지원까지 종합 서비스가 제공된다. 히키코모리 본인과 가족을 돕는 서포터를 적극 양성하고 있다. 윤 소장은 “비대면 사회가 가속화 되면서 고립된 환경에 놓이는 청년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내 자녀에게 은둔 경향이 보인다면
자녀가 대화를 끊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청년 니트와 사회적응실태 및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은둔에 빠지기 쉬운 청소년의 특성은 이렇다. 수년간 은둔형 외톨이를 상담해 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선량하고 착한 아이, 자책을 많이 하고 인정 욕구가 많은 아이,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아이들….”

“부정적 평가에 취약한 아이들이 비난을 받지 않으려다 보니, 학교에서 (경쟁에서) 밀렸을 때 갈 데가 집밖에 없는 경우….”

“방임하는 부모뿐 아니라 과잉보호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실제로 은둔형 외톨이들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 많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도 한다. 10대 때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어머니의 극단적인 선택을 목격하며 ‘심리적 은둔’에 빠졌었다는 한 모 씨(20·여)는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보고서는 자녀가 은둔에 빠지게 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이 부모와의 관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부모가 은둔 중인 자녀에게 밖으로 나갈 것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조언과 충고를 반복할 때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쿠나 미노루 K2인터내셔널 매니저는 “사회와 연결을 끊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다. 그 신뢰는 가족에게서 오는데 부모가 자녀를 다그치거나 평가하려고만 하면 상태가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서울 성북구 공동생활시설에서 은둔 경험을 가진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은둔 경향이 심하지 않을 때 빨리 심리 상담을 하거나 병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닫힌 마음을 단번에 열겠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 아들을 둔 주상희 씨(58·여)는 올 1월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를 설립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을 돕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해 온 그의 아들(31)도 이제 막 은둔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처음엔 주 씨도 조급했다. 상담과 치료를 받는데도 변화가 없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민달팽이야. 매일 1cm씩 움직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줘.” 실제로 아들은 변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일주일을 못 버티고 그만두던 아들이었는데 어느 새 석 달, 넉 달씩도 일하게 됐다. 주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밖으로 나갈 의지가 있어도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한 번 부스러진 마음이 다시 붙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둔형 외톨이를 ‘잠재적 범죄자’ ‘실패자’로 낙인찍는 것도 이들의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한다. 주 대표는 “경쟁만 부추기는 교육 시스템의 희생양”이라고 했다. 1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해 온 김 모 씨(28·여)는 “직장을 구하고 싶어도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으니 막막하다”며 “이런 두려움 때문에 은둔 기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직업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노인이나 장애인 정책이 따로 있듯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종합적인 발굴 및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민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