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사상가 장자(莊子)의 혁신적 사고도 ‘무지(無知)’에서 출발한다. 장자를 혁신적으로 만든 건 ‘유지(有知)’가 아니라 ‘무지’였다. 우주의 신비를 몰랐기 때문에 대붕(大鵬·북해에 살던 큰 물고기가 변해 생긴 전설 속 새)을 상상했고,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호접몽(胡蝶夢·장자가 나비가 돼 날아다닌 꿈)을 떠올렸다. 장자에게 좌망(坐忘·팔다리와 몸을 늘어뜨리고 눈과 귀를 쉬게 하고 앉은 채 육체와 세속의 지식을 잊어버려 하늘의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한 수양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고 비우기 위한 수양이었다.
장자는 세상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모기로 하여금 산을 지게 하는 것(使蚊負山·사문부산)”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식이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게 하라(無爲知主·무위지주)”고 경고한다. 지식을 들먹이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행위는 혁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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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결과는 뻔하다. 유발 하라리는 TV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스타트렉’ 시리즈의 데이터 소령을 예로 든다. 미지의 문명을 찾아 우주를 항해하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안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는 생물학적 인간인 커크 함장이 아니라 인공지능인 데이터 소령이다. 승무원들은 데이터 소령의 판단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따른다. 그의 존재감은 인간 승무원들의 존재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인간들은 데이터 소령을 분해해서 설계도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그와 똑같은 사람(인공지능)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는 인간의 종교이자 우상이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없지 않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 내재돼 있는 힘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을 무작정 내치기도 어렵다. 아직은 제대로 알 수 없고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데이터를 신으로 떠받들면서 사는 세상이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지식과 정보의 발견, 축적, 폐기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진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그 속도가 번개처럼 빨라질 수도 있다. 이런 속도에 적응하려면 조직의 의사결정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장자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다 같이 무지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할 때 혁신이 가능하다며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사고 체계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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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8월 1일자(302호)에 실린 ‘“내가 다 안다” 혁신 막는 꼰대 리더십’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