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
정부의 고민도 깊어 보인다. 정부는 응급처치의 하나로 임대료 감면기준을 제시했다. 민간인 사이에서도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번졌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의 조치 가운데 계약상 임대료의 몇 %라는 식의 감면방식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임대료 감면은 민간 캠페인과는 다르다. 재정수입 증감과 산업의 활력에 직결되는 정책인 만큼 실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김해와 김포 국제공항의 출입국은 방역체계상 인천국제공항으로 합쳐졌다. 당연히 두 곳의 면세점은 영업실적이 없다. 두 공항의 셧다운으로 임대계약의 기초가 무너졌다. 사정이 이러한데 여전히 임대료를 내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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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은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다. 방역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국제적 이동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없다면 면세점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그때는 재정수입이 주는 게 아니라 아예 없어진다. 실업도 피할 수 없다. 한국 면세점사업이 쌓아온 노하우와 평판도 모두 사라진다.
지금 정부 산하기관은 ‘착한 임대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임대인’의 모범을 보일 때다. 미국은 대다수 국제공항에서 임대료를 전액 면제하거나 매출연동제를 통해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에는 예상치 않았던 사후적 사태의 등장으로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면 이에 대한 이행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계약좌절(frustration)의 법리가 있다. 법리논쟁을 떠나 미국이 재빨리 정책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여러 나라가 매출연동제를 택했다. 이 나라들도 재정수입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당장의 수입보다 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중요하고 더 큰 재정적 기여를 할 때까지 필요한 처방에 주력하는 게 좋은 대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김선정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