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 출연으로 뜬 로커 전상규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24일 만난 음악가 전상규 씨는 “15년간 교촌치킨, 에쓰오일, 삼성전자, SPC, 빙그레 등 다양한 광고 음악을 만든 경험도 응원가 즉석 작곡에 도움이 됐다. 요즘 미국 야구 팬들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온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며칠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인터뷰 제안 e메일이 왔을 때, 전 씨는 피싱 사기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5월 초,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에서 출연 요청 메일이 왔을 때 그랬듯….
24일 만난 전 씨는 “주변 사람들도 ‘메일 본문 아래 링크는 절대 누르지 말라’고 조언했다”며 웃었다.
광고 로드중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피클스’가 구단 트위터에 올린 그림. 포틀랜드 피클스 트위터 캡처
전 씨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작업실 컴퓨터 앞에 통기타를 들고 앉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화상 생중계. 야구경기 시작 시간은 한국 기준 오후 6시 반, 현지 기준 오전 5시 반. 졸음을 참고 화상중계 시스템을 켠 ESPN의 간판 캐스터 칼 래비치, 해설자 에드 페레스가 전 씨의 미국식 개그와 즉석 작곡에 뒤로 넘어갔다.
이달 17일, 또 출연했다. 이번에도 5분 출연 약속이 1시간 출연으로 연장. 이번엔 래비치와 페레스의 로고송을 즉석에서 통기타로 작곡해줬다. 만루 위기 상황에서 페레스가 “주자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낮게 던져야…”를 연호하자 ‘Keep the Ball Down’이란 곡을 앉은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 불러줬다. 트위터에서 인기를 얻었다. 미국 야구팬들 사이에 그는 이제 유명인이다.
“20대 때 2년 반 정도 미국에서 살았어요. 필라델피아에서 유학(템플대 영상인류학 석사 과정)을 하다 로스앤젤레스로 넘어가 녹음 엔지니어 과정을 수강하며 현지인들과 섞여 놀았죠. 그때 경험이 도움이 될 줄이야….”
광고 로드중
“한국의 야구 응원 문화도 소개하고 응원곡도 불러줬어요. ‘우린 핫도그 안 먹어. 치맥 먹어’ 하니 재밌어 하더군요.”
화제 속에 전 씨는 얼마 전, 미국 대선후보 로고송 작곡가도 됐다. 오리건주 독립구단 ‘포틀랜드 피클스’의 마스코트인 ‘딜런 티 피클’이 재미 삼아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구단 측에서 ESPN을 보고 전 씨에게 로고송을 의뢰한 것.
전 씨는 1982년 다시 태어났다.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이종도의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이 그의 심장을 비틀스보다 먼저 강타했다. 대학에서는 연고전 통합 상쇠로 뽑힐 정도로 꽹과리에 미쳐 살았다. 1998년 록 밴드 ‘와이낫’을 결성하고 비틀스 헌정 밴드인 ‘타틀즈’에서는 ‘전 레넌’으로 활약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마포구 라이브 클럽 ‘타’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음악은 일이자 직업이고, 야구는 친구 같은 취미예요. 뭐가 더 좋냐는 질문은 ‘엄마가 좋냐, 아내가 좋냐’ 수준이죠.”
광고 로드중
지난달 전상규 씨(오른쪽)가 캐스터 칼 래비치(왼쪽), 해설자 에드 페레스와 ESPN 생중계에 출연한 화면. 유튜브 채널 야잘잘 캡처
“요즘 ESPN에서 제게 ‘영어 되고 특정 구단의 팬이면서 재밌는 사람, 너 말고 또 없냐’고 닦달해요. 이젠 절 무슨 흥신소 직원으로 아는 건지….”
전 씨는 당분간 이 상황을 그저 즐기려 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저의 배경부터 한국의 코로나19 상황, 감염병 속 스포츠의 미래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더군요. KBO와 LG트윈스를 알리는 민간 홍보대사 역할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음악과 야구가 결합된 앨범을 하나 만드는 것도 그의 목표다.
“그동안 썼던 응원가들, ESPN 즉석 작곡을 모으고 신곡도 덧붙여볼까 해요. 팬들의 함성소리도 넣고요. 함성에 대한 갈증. 그건 야구장에 못 가는 선수와 팬 모두 지금 정말 절실하지 않나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