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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총[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45〉

입력 | 2020-06-17 03:00:00


네덜란드의 명문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졸업생이 자신을 힘들게 했던 교수들 중 한 명인 학과장을 향해 총을 쐈다. 무시무시한 얘기 같지만, 사실 그 총은 눈물을 총알로 사용하는 총이었다. 맞더라도 작은 우박에 맞는 정도의 느낌일 터였다. 그래도 총은 총이었다.

총을 쏜 졸업생은 대만 출신의 천이페이였다. 그것을 만들게 된 계기는 디자인 전공 석사과정을 이수하면서 경험한 심한 좌절감 때문이었다. 동양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천에게 교수는 권위 그 자체였고 교수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다. 교수가 과제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비난해도 천은 속만 끓일 뿐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그러한 문화적 장벽에 언어의 장벽까지 겹쳐졌다. 급기야 동료 학생들이 그를 대신하여 교수에게 항의를 할 정도였다. 결국 그는 눈물을 보였고, 우는 것이 창피해 교실을 나왔다. 그 경험이 그를 눈물총으로 이끌었다.

그는 과제의 일환으로 눈물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총은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실리콘 호스로 받아 실린더에 부착된 드라이아이스로 급속 냉동해 총알로 만들어 발사하는 원리였다. 그것은 눈물의 무기력함과 총의 공격성을 모순적으로 결합시킨 총이었다. 1년 반 동안 수업을 받으면서 느꼈던 좌절감이 예술적인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었다. 그가 졸업식장에서 그 총을 발사한 것은 물론 허용되었기에 가능한 예술행위였지만, 억눌렸던 좌절감의 표출이면서 권위에 대한 도전의 몸짓임에는 분명했다.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눈물총은 그렇게 발명되었다.

눈물총은 그만이 아니라 낯설고 물선 곳에서 눈총과 오해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외국인들이 느낌 직한 억눌린 감정과 그들의 실존에 대한 훌륭한 은유였다. 더 훌륭한 것은 자신의 눈물을 총알로 사용하는 총을 만들어 억눌린 감정과 상처, 좌절감도 때로는 예술의 질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