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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 2020-06-08 03:00:00

〈16〉별을 본다는 것




로버트 라우셴버그 ‘하얀 그림’ 1951년.

눈이 많은 곳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하얗다’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언젠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주장을 처음 한 것은 미국 인류학의 아버지라는 프랜츠 보애스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캐나다에 사는 이누이트 사람들과 서남 알래스카에 사는 유피크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어휘를 통해 ‘하얗다’라는 의미를 표현한다고 한다. 이누이트 사람들과 유피크 사람들이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유명한 추상회화 ‘하얀 그림(White Painting·1951년)’을 처음 보았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본 흰 그림을 묘사하기 위해 여러 관련 어휘 중에서 가장 걸맞은 것을 신중히 고르려 들 것이다.

‘본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도 에스키모인의 하얗다에 버금가게 많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見, 視, 看, 觀, 察, 覽, 監, 睹, 적, 窺, 仰 등이 있다. 게다가 이 글자들의 뜻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지면 관계상 그 뜻을 대략 구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見(견)은 어떤 것이 시야에 들어와 감각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강조한 ‘보다.’ 視(시)와 看(간)은 동작의 의미가 강조된 ‘보다.’ 覽(감)과 監(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다.’ 睹(도)는 시선을 모아서 ‘보다.’ 적(적)은 사람끼리 예를 갖추어 만나 ‘보다.’ 窺(규)는 몰래 혹은 작은 구멍을 통해 ‘보다.’ 仰(앙)은 우러러 ‘보다.’ 觀(관)은 거리를 두면서 자세히 관찰하거나 감상할 때 쓰이는 ‘보다.’ 察(찰)은 ‘관’보다 더 자세히 살펴 ‘보다.’ 실로 중국 송대의 사상가 주희(朱熹)는 ‘그의 동기, 방법, 귀착지를 살펴보라(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는 논어 구절을 해석하면서 “觀은 視보다 자세히 보는 것이고, 察은 그보다 더 자세히 보는 것이다(觀, 比視爲詳, 察, 則又加詳矣)”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첨성대 사진.

그러면 첨성대(瞻星臺)라고 할 때 첨(瞻)은 무슨 뜻인가. 첨성대는 말 그대로 ‘별을 보는 대’인데, 여기서 ‘본다’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면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있는 신라 중기 석조건축물 ‘첨성대’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과학사학자 이문규가 정리한 바 있듯이 이 석조건축물의 용도와 의미에 대한 논란은 그칠 줄 모른다. 천문대라는 주장에서부터 종교적 상징물 혹은 제단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과학사학자 송상용의 회고에 따르면 며칠 전 작고한 수학자 김용운과 동양사학자 이용범은 첨성대 해석을 두고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첨성대에 대한 고대 사료는 극히 적다. 삼국사기에는 아예 관련 기록이 없고 삼국유사에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練石築瞻星臺)’는 말만 짧게 나올 뿐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첨성대’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보인다. 따라서 이 ‘첨성대’가 과연 오늘날 우리가 첨성대라고 알고 있는 그 건축물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즉,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의 그 첨성대는 역사상 존재했던 많은 첨성대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첨성대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뭔가 시사하는 바는 없을까. ‘첨, 성, 대’라는 세 글자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글자는 ‘본다’는 뜻의 ‘첨(瞻)’이다. ‘본다’라는 뜻을 가진 다른 한자들과 달리 이 ‘첨’은 위에 있거나 앞에 있는 대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본다는 뜻이다. 즉, ‘본다’는 번역보다는 ‘바라본다’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 ‘논어’에서 안연(顔淵)은 스승인 공자를 찬탄하며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깊이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고, 바라보면(瞻) 앞에 계시다가 홀연히 뒤에 계신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고 말한다. 즉, ‘첨(瞻)’은 앞이나 위에 있는 경외할 만한 대상을 바라볼 때 사용하기 좋은 단어이다. 첨성대라는 표현은 신라 사람들이 별을 경외했다는 점을 나타낸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