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 우주선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엄두도 못 내던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수 있었고, 자신감을 얻은 열정적인 청년 물리학자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 역시 이 장비를 이용해 많은 실험을 진행했고 논문을 쓸 수 있었고 더 큰 꿈을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30년 전 달나라의 동화 같은 시절 이야기다.
이 우주선은 이제 실험실 구석에 있는 가장 평범한 장비로 학부생들이 사용하는 정도의 실험 장비가 되었다. 요즘 실험 장비들은 더 정밀해지고 복잡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일개 대학 실험실이 갖기에는 말 그대로 ‘거대’해진 장비도 많아졌다. 한 사람의 손으로 작동하던 장비들은 이제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정밀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동되고, 얻어진 수많은 결과는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는 처리할 수 없다.
청주에 세워지는 방사광가속기의 목적은 원자를 쪼개는 작업을 하는 가속기와는 다르다. 가속기의 원리는 같지만 가속하는 입자가 방출하는 방사광을 이용한다. 가속이 클수록 방사광의 파장이 짧아져 X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정교한 수술 메스 같은 X선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노물리학, 반도체, 배터리, 철강, 생명공학, 신약개발, 의학 등 미래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방사광가속기는 단순한 기계 설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의 열정이 더해지면 어떤 장치로 변모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청주의 방사광가속기 주위로 젊고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마치 30년 전 달나라의 동화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해줬던 우주선처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