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건축가들 대담집 ‘건축문답’
건축가 필리프 람이 2009년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공간설치작품 ‘가정의 천문학(domesticastronomy)’. 열의 대류에 착안해 온도 조건에 적합한 공간 기능을 수직적으로 분할했다. 미진사 제공
마르크 안젤릴 취리히대 건축학과장은 서문을 통해 “건축 분야에서 사고의 방향은 건축계 내부의 대화를 통해 확립된다. 이 책은 (건축가들이 가진) 스타일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와 행동 사이에 잠재된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밝혔다. 저자로 참여한 건축 칼럼니스트 9명은 이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랐다.
올해 88세인 루이지 스노치부터 46세인 지몬 하트만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른 스위스 건축가 30팀이 간결한 질문에 내놓은 솔직담백한 답변을 정갈하게 묶었다. 제각기 지나온 천차만별의 시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思考)의 구조물처럼 세워진 문장들이 책장 넘기는 손을 여러번 붙들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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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쪽의 묵직한 책이지만 멋들어진 사진에 할애한 페이지는 없다. “건축은 형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에 대한 문제이며, 형태는 건축의 결과일 뿐이지 조건이나 시발점이 아니다”라는 프란체스코 부치의 말을 책의 얼개를 통해서도 들려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20세기 말에 유행했던 거창한 현학적 담론집도 아니다. “작은 오두막 하나가 주변 호수와 본질적 변화를 주고받으며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건축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상태”라는 마리오 보타의 눈높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광장 개축 설계안을 제출하도록 요청한 뒤 설계비를 당연한 듯 지불하지 않는 시 정부”에 대한 환멸(스노치), “이상한 겉치레와 자기도취적 연출의 유행, 수다스럽고 제멋대로인 짧은 생각의 대화로 뒤덮인 세상”에 대한 저항감(부치)의 토로는 비슷한 고뇌를 끌어안고 분투 중인 건축가들에게 자그마한 위안의 연대감을 전해줄지도 모르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