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만난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의 이정식씨(77·여) 부부. 부부는 영화의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 소식에 “기뻐서 잠도 못잤다”며 웃었다. © News1
영화 ‘기생충’이 10일(현지시간 9일 오후)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역사를 새로 쓴 지 하루 만인 11일, 영화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의 사장 내외는 아직도 기쁨이 가시지 않는 듯 활짝 웃었다.
돼지슈퍼는 영화에서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대학생 친구인 민혁(박서준)에게 과외를 넘겨받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한다. 기우가 민혁과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골목이 슈퍼 앞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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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찾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 © News1
김씨는 영화를 보며 “‘여보, 우리 가게 나왔어’ 하며 반가워서 남편에게 막 말했다”며 “가게가 예쁘게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모처럼 본 영화에 관해서는 “우리 삶이 묻어나는 영화”라며 “나도 처음에 우리 아저씨(남편) 만나서 어려운 데서 살아보고 했는데, 예전에 고생한 생각들이 나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 역시 “내 일생을 찍은 영화라고, 나를 찍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며 “송강호가 맡은 역할이 나와 비슷하다”고 아내와 같은 감상을 전했다.
‘돼지슈퍼’의 김경순씨(73·여)가 찍은 ‘기생충’ 촬영 당시의 봉준호 감독.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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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장사가 잘 되는 게 제일이죠.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지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음료수라도 하나씩 사먹고 가면 좋겠어요, 하하”
11일 찾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스카이피자’ © News1
피자가게는 ‘기생충 효과’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엄씨는 “어제(시상식 당일) 집이 여의도라는 젊은 사람이 오후 6시쯤 헐레벌떡 와서는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며 피자를 사 가더라”며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사람이 와서 피자박스를 (기념품으로) 얻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기택의 가족이 접던 피자박스는 실제 쓰고 있는 피자박스와는 다른 디자인이다.
가게 한쪽에는 봉 감독의 사인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생충 순례’를 하면서 남긴 손편지도 남아 있었다. 엄씨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지만 몸짓 발짓을 하며서 피자를 먹고 갔다”며 “영화를 보고 찾아왔다며, 좋다고 엄지를 들어올린 채 사진도 찍더라”고 했다. 봉 감독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신문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며 “말할 때도 존댓말을 쓰고 중심을 잡아서 코치를 하는 것 같더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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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찾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스카이피자’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남긴 메시지가 남아 있다. © News1
“어제 수상소감을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회사에서 한번 시켜먹어볼 생각이에요. ‘기념비적인 칸의 느낌을 한번 맛보자’는 의미로 시켜먹으려고요. 하하”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극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관왕에 오르며 101년의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또 외국어 영화로는 작품상을 처음으로 수상하면서 외국어 영화에 쉽게 벽을 허물어주지 않았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92년 역사도 갈아치웠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도 수상했는데,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것은 역대 두 번째다.
1929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일명 ‘오스카’로도 불리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이다.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가 상을 수여한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본상 후보에 올랐으며,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미술상·국제극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까지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