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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직권남용죄’ 엄격 해석…김기춘·조윤선 형량 줄어드나?

입력 | 2020-01-30 16:45:00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2018.6.11/뉴스1 © News1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원심도 파기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직권남용권리행사죄에 내놓은 첫 판단으로 주목 받았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까지는 검찰이 이 조항을 적용해 기소한 사례가 워낙 적어 판례 등 법리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직권남용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규정한 형법 123조를 원심에 비해 보다 세밀하고 엄격하게 해석했다.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 행위는 직권남용이 맞지만, ‘명단 송부’ ‘공모사업 진행 중 심의 상황 보고’ 행위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직권 남용 행위’와 ‘의무없는 일’은 별개…따로 살펴봐야”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행위’가 위법이 맞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했던 일이 ‘의무없는 일’이 맞는지, 법령상 그 행위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법 123조는 직권남용죄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행위’로 규정한다. 여기서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과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은 ‘직권을 남용한 행위’에 따른 ‘결과’인데, 둘 중 어느 하나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행위’의 결과로서 벌어졌다면 죄가 성립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행정기관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속 직원들이 종전에도 문체부에 업무협조나 의견 교환 등의 차원에서 명단을 송부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종전에 한 행위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을 살피는 방법으로 법령 위반 여부를 심리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점에 비춰볼 때 원심이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직원들이 김기춘 등의 지시를 받아 각종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송부하거나 공모사업 진행 중 심의 상황을 보고한 행위가 의무없는 일이 맞았는지부터 살펴야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의 기준에 따르면 만일 김기춘 전 실장 등의 지시가 내려오기 이전에도 통상적으로 협력기관으로부터 비슷한 요청을 받아 명단을 보내고 심의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행위를 해왔다면 이를 ‘의무없는 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에서는 명단송부 행위나 심의진행 상황 보고 같은 통상적인 절차적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커졌다.

◇“산하기관 사업 수행 기준은 서로 달라…포괄일죄 성립 안돼”

대법원은 또 원심이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 부당개입, 2015년 예술영화지원사업 지원배제, 도서 관련 지원배제 부분을 포괄일죄(여러 개의 행위를 하나의 죄로 포괄하는 것)로 인정한 것도 잘못이라고 봤다.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의 사업은 수행 일자별로 기준이 다르고, 수행자와 사업 사이, 연도별 사업 범위에 있어서 단일성, 동일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그 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아 퇴임 후의 범행에 관해서는 직권남용죄의 공범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퇴임 뒤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 형량이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

한편 조희대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청와대 문건을 특별검사에게 제공하고 특별검사가 원심에 증거로 제출한 행위는 특별검사의 직무상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침해하여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판단, 무죄라는 의견을 냈다.

조 대법관은 대통령이나 대통령비서실 또는 행정부의 행위를 허용하게 되면, 행정부의 막강한 행정력을 이용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고 정치적 보복을 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무죄 취지 의견으로 박상옥 대법관은 피고인들의 지원배제 지시 행위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으며,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대법관은 Δ공무원의 행위가 위헌적으로 평가된다는 이유만으로 직권을 남용하였다고 인정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는 점 Δ모든 문화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지원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개인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다는 점 Δ지원 배제 단체나 개인이 국가가 조성한 기금을 받지 못할 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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