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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굿장단으로 신명나는 한판… 세계가 “베리 베리 굿!”

입력 | 2020-01-30 03:00:00

현대적 굿판 추구하는 실험적 국악밴드 ‘악단광칠’




지난해 10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월드뮤직 박람회 ‘워멕스’ 무대를 뒤집어놓은 국악 그룹 ‘악단광칠’. 올해 달력은 더 너덜너덜해졌다. 3월부터 11월까지 유럽, 아시아, 미국 투어 스케줄이 빼곡하다. ⓒJacob Crawfurd

《“이렇게 신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이 엄청난 밴드를 내 작은 데스크(유명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세울 방법을 궁리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의 프로듀서이자 유명 진행자인 밥 보일런은 최근 자신의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에서 침을 튀기며 한 밴드를 칭찬했다. 이름하야 ‘악단광칠’. 황해도 굿을 기반으로 가야금 아쟁 대금 피리 생황 타악 노래가 어우러진 9인조 국악밴드다. 이들은 올여름 유럽에서 한바탕 굿판을 벌인다. 덴마크 ‘로스킬레’ 페스티벌(7월), 헝가리 ‘시게트’ 페스티벌(8월)에 초청받았다. 매년 수십만 명이 몰리는 유럽 대표 야외 음악축제들. 우리 음악계에 뜻밖의 쾌거다.》


악단광칠은 2015년 결성했다. 2000년 창립해 국악의 현대화를 꿈꾼 진보적 단체 ‘정가악회’의 일부 단원으로 실험적 유닛을 만든 것이다. ‘광칠’은 광복 70주년(2015년)의 준말. 최근 만난 멤버들은 “실은 ‘돌아이’ 같은 어감이 더 맘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세 명의 보컬이 팔다리를 맞춰 흔들며 돌림노래 형식으로 부르는 대표곡 ‘영정거리’(QR코드)만 들어봐도 돌아이적 특성을 만끽할 수 있다. 평생 국악을 전공한 멤버들의 연주 내공에 찰떡같은 합이 더해진, 가히 귀기 어린 실황이다.

지난해 10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세계 최대 월드뮤직 축제 ‘워멕스(WOMEX)’는 이들의 음악을 ‘코리안 샤머닉 펑크(Korean Shamanic Funk)’로 소개했다. 이달 11일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 12일 북미 최대의 월드뮤직 박람회인 ‘글로벌페스트’ 무대에 선 뒤에는 ‘케이포크팝(K-folk pop)’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뉴욕타임스마저 “케이팝과 전통음악을 결합한 아찔한 쇼 밴드”라며 극찬했다.

리더 김현수 씨(대금)는 “정가악회에서 10여 년간 가곡이나 줄풍류를 기반으로 국악 현대화를 추진했지만 현대성과 대중성에 대한 좀 더 확장된 형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 (악단광칠을) 만들게 됐다. 당시 황해도 음악을 활용한 창작국악단체가 거의 없어 이쪽 길을 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9명의 ‘악단광칠’ 멤버는 국악기와 목소리만으로 EDM부터 헤비메탈까지 다양한 느낌을 뿜어낸다. 앞줄 왼쪽부터 왕희림, 안민영, 선우진영, 원먼동마루, 가운데줄 왼쪽부터 박혜림, 이향희, 방초롱, 김현수, 뒷줄 전현준. 문화상인 보부 제공

악단광칠의 힘은 집단창작 체계다. 탄탄한 연주력과 해석력을 가진 9명이 각자의 파트를 짠 뒤 함께 조율하는 과정이다. 이 견고한 케이크 위의 체리는 세 보컬의 ‘경거망동’.

“깊이로 파고드는 전통음악만 전공한 저희로선 대중과의 호흡법이 가장 큰 숙제였죠. 이씨스터즈, 윤복희 씨의 미군부대 공연 영상을 보며 영감을 얻었습니다.”(방초롱·보컬)

‘워멕스’ 공연 말미에 이들이 무대 밑으로 뛰어내리자 객석에는 ‘난리’가 났다. 그 자리에 있던 전 세계 공연기획자들이 러브콜 30여 건을 쏟아냈다.

멤버들은 “결성 초기 서울 홍익대 앞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시골 마을 경로당의 장판 바닥을 양말바람으로 뛰면서 진짜 신명 나는 굿판의 모습을 체험했고 성장했다”고 했다. 국악 전공자들이지만 힙합, 클럽음악, 기타 연주, 비트메이킹까지 저마다 관심사가 다양한 것도 음악 화학실험에 도움이 됐다.

“현대적인 굿판을 추구합니다. 스무 살 무렵 록 페스티벌을 즐기면서도 ‘나는 국악을 전공했으니까 저런 무대에는 못 오를 거야’라며 체념했어요. 아니었죠. 저는 제 지금이 정말 맘에 듭니다.”(박혜림·아쟁)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