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LG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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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선생님 한분이 나타나 호루라기를 불며 구령을 부치는데, 그 모습이 하도 엄해 우리는 벌벌 떨었지요. 정말 호랑이 선생님이 오셨구나 하면서요.”
고(故)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은사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남겼다. 그 ‘호랑이 선생님’은 14일 작고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다.
이날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는 경영인으로서 회사에 몸을 담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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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중학교를 거친 구 명예회장은 꿈을 이루기 위해 1994년 진주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했다.
구 명예회장은 1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진주 지역의 한 소학교로 발령받았는데 학교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시 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구 명예회장의 부친인 구인회 회장에게 일본군에 기증할 경전투기 구입을 위해 기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임 첫날부터 구 명예회장은 찬밥신세를 당했다. 부임 첫날부터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그를 대했고 자리고 구석자리에 배정받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교사가 됐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 구 명예회장은 출근을 포기하고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한동안 감나무와 복숭아나무를 가꾸던 구 명예회장은 다행히 모교였던 지수초등학교에 부름을 받아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퇴근 후에는 농사일을 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수초등학교에서 2년,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에서 3년을 교직에 몸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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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구 명예회장은 “만일 내가 기업가로 변신하지 않았다면 교직을 천직으로 삼았을 것”이라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까지 교편을 잡았던 5년여의 세월은 구 명예회장이 LG그룹의 회장에 오른 이후에도 영향을 줬다. 어떤 경영인보다 ‘교육’과 ‘인재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확실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뒤 1973년 연암학원을 만들었으며 1974년에는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 1984년 연암공업전문대학을 차례로 설립했다.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이 취임한 이후 1970년부터 학업 성적이 우수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등록금과 교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그 대상을 대학원생까지 확대했다. 더불어 1989년부터는 해외에서 연구하고 있는 교수진들을 선발해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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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구 명예회장은 ‘교사’로의 소명을 기업인이 되고서도 버리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1988년 11월 LG그룹의 종합 연수원인 인화원 개원식에서 “인재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LG그룹에 따르면 구 명예회장은 생전 ‘우물 안에 큰 고기가 없고 새로 가꾼 숲에는 큰 나무가 없다’는 옛말을 강조해왔다. 현재도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의 유지는 대를 이어 경영인들에게 계승돼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를 중시하고 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