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식당 사장이 한국 경제에 던진 질문들
박용 뉴욕 특파원
서울에서 근무시간이 단축되면서 회식이 줄고 일찍 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아 저녁 장사가 신통치 않다는 얘길 하면서도 속으론 찜찜했다. 미국은 사무직과 전문직 등 예외 직종을 빼고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다. 그런데도 A 사장의 뉴욕 식당은 저녁 장사에서 테이블을 서너 번 돌리지 않으면 비상이 걸린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2.9% 성장했다. 올해는 2.2%, 내년에는 2.0% 성장을 점친다. 잠재성장률(1.9%)을 웃도는 성장세다. 그런데도 맨해튼 부동산시장 분위기는 별로다. 공급이 늘어난 데다 세금까지 불어 가격이 떨어졌다. 오죽하면 부동산 브로커들이 “지금은 맨해튼에서 ‘돌멩이’만 사도 돈이 된다”며 해외 부자들을 유혹한다. 집값만 폭주하는 서울과는 분위기가 한참 다르다.
A 사장의 서울 방문이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음식 주문과 계산을 해주는 기계를 들인 식당을 서울에서 배워 뉴욕에서 도전해볼 참이다. 미국 노동시장은 반세기 만의 최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사람을 구하기 힘드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그나마 낮다. 장사가 안된다고 걱정하는 서울의 식당 사장님들이 느끼는 최저임금 인상의 강도는 뉴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한 지 1시간 만에 내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한 경제적 치적 중 하나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초당적 합의를 발표할 수 있었다. 속내야 어떻든 대통령 탄핵 논의와 대선을 앞둔 비상 국면에서도 민생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일부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초당적 합의는커녕 예산안, 선거법 날치기 공방이 벌어지는 한국 정치권과는 다르다.
서울 도심 식당들의 테이블마저 놀리게 한 ‘주 52시간 근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작업장의 생산성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한국 최대 자동차 회사 공장에서 근무시간 중 와이파이를 쓰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노조가 야간 근무를 거부하는 ‘와이파이 태업’이 벌어진다는 걸 A 사장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내년 세계 경제가 올해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한다. 북한 비핵화 협상, 미중 무역전쟁, 미 대선 등 한국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위기의 뇌관도 도사리고 있다. 내년엔 자신만의 이론으로 중무장하고 침대에 맞춰 사람 다리라도 자를 것처럼 덤벼드는 ‘칠판 경제학자’보다 음식점과 시장, 기업과 공장 등 현장을 누비며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공무원,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