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1936∼2019] 대우맨-각계인사 추모 발길 이어져
1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이날 조문객 3000여 명이 몰려 고인을 추모했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문근 전 대우 회장비서실 사진담당(60)은 1987년에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함께 파키스탄에 갔다. 여권 8권의 시작점이었다. 대우건설은 파키스탄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하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이 이 씨와 동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20주년을 맞았던 대우그룹이 사사를 정리했는데 김 전 회장은 너무 글만 가득해 잘 읽히지가 않는다며 이 씨에게 “30주년 사사에는 사진을 멋지게 넣자”고 했다.
10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호주와 뉴질랜드만 빼고 세계 구석구석을 다 다녔다”고 했다. 대우자동차의 히트상품 ‘르망’이 파키스탄 영업용 택시를 석권했을 때, 1992년 한중 수교, 한-베트남 수교 등 역사의 현장에도 함께했다. 하지만 사진이 담긴 사사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30주년이던 1997년에 외환위기가 오면서 대우그룹의 경영이 흔들렸고 1999년 해체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광고 로드중
고인의 빈소를 찾은 옛 대우맨들은 김 전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며 대우의 세계경영 정신이 잊혀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경훈 전 ㈜대우 회장(84)은 “김 회장은 ‘내 눈에는 세계 곳곳이 바닥에 전부 금이 깔린 것 같다’고 했다는데 실제 해외를 누벼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76)은 “외환위기 때 정부와 잘 타협해서 (리스크를) 조금 줄였으면 대우가 해체되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1998년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동아일보DB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78)은 출장을 가서 같은 방을 쓸 때 먼저 잠이 들었다가 오전 4시에 깨어 보니 김 전 회장이 책을 보고 있었다는 일화를 꺼냈다. “왜 안 주무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오전 8시에 조찬이 있어서 잠을 안 자고 미리 책을 읽는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1999년 4월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대우자동차 '마티즈를 소개하는 고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광고 로드중
정계와 재계에서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주호영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서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모자가 나란히 빈소를 찾아 약 40분간 머물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도 조문했다. 고인이 ‘양아들’로 불렀던 배우 이병헌도 다녀갔다. 이 밖에도 고인이 생의 마지막까지 애정을 쏟았던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출신 20여 명이 한국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롯데 황 부회장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할 때 고인이 일궈 놓은 네트워크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프런티어 정신(개척자 정신)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한진 조 회장은 “김 회장의 작은아들과 친구”라며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다”고 했다. 현대차 정 수석부회장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따로 추도사를 내고 “회장님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헌신적인 애국자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98년 9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고인의 경기고 후배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과거 압축성장 시기 대표적 경영인이었다. 이런 분들이 경제를 빨리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일할 땐 잠도 제대로 안 자면서 젊을 때 박력 있게 일했는데 이제 편히 쉬길 바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1991년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 참석 차 방한한 리란칭 중국대외경제무역부장과 악수하는 고인. 동아일보DB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