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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주니어를 위한 칼럼 따라잡기]엉터리 존댓말

입력 | 2019-11-06 03:00:00


프랑스 한 카페의 메뉴판에 적힌 커피 한 잔 가격은 7유로다. 같은 커피 한 잔을 주문할 때 “커피 한 잔, 부탁해요”라고 말하면 커피값은 4.25유로로 내려간다. 더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할 경우 가격은 5분의 1 수준(1.4유로)으로 더 떨어진다.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커피를 주문할 때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장난 삼아 이런 메뉴판을 만들었는데 차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졌다고 한다.

요즘 한국의 커피전문점에선 직원들이 “총 1만 원이십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민센터에서 “인지(印紙)값이 500원이시고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아니라 엉뚱하게 사물을 높이는 엉터리 존댓말이다. 어법을 무시한 ‘사물존칭’인데 실제 문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무조건 높임말을 사용하려다 보니 주술 관계나 맥락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선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 같다. “결제 도와 드리겠습니다” “테이블 정리 도와 드리겠습니다”처럼 ‘도와 드리겠다’는 표현도 남발되면서 어느덧 새로운 어법처럼 일상화되고 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백화점을 비롯한 소매업체에서 남자 손님이면 ‘사장님’, 여자 손님이면 ‘사모님’이라고 무조건 부르는 현상이 생겼다. 백화점 판매사원이 이런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고 해서 ‘백화점 높임법’이라고 불렸는데 매출을 늘리기 위해 고객들의 환심을 사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이런 호칭은 2000년대 들어서 ‘고객님’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사물존칭 현상도 이런 호칭 인플레이션의 확대판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언어의 변화 과정이며, 더 공손하게 들리는 표현이 나쁠 건 없지 않으냐는 긍정론도 있지만 엉터리 존댓말로 덧칠된 사물존칭 현상이 고유한 우리 문법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어쨌든 서비스 업계 직원들은 사물존칭이 잘못된 표현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그런 표현을 써야 예의와 격식 있는 대우를 받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란다. 만에 하나 직원이 공손하지 않다며 고객들이 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아온다. 가뜩이나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아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려운데 표현 문제로 자칫 고객의 심기를 거스를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동아일보 10월 26일자 정연욱 논설위원 칼럼 정리


칼럼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1. 다음 중 본문을 읽고 보일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엉터리 존댓말은 커피 전문점에서만 사용되고 있구나.

② 어법을 무시한 ‘사물존칭’이 일상화되는 것은 경계해야겠구나.

③ 서비스 업계 직원들은 사물존칭이 잘못된 표현임을 알면서도 사용할 수밖에 없구나.

2. 한 커피 전문점은 고객이 공손하게 주문을 할 경우 한 잔에 3500원 하는 커피를 7분의 1 수준 가격에, 한 잔에 6000원 하는 음료를 12분의 1 수준 가격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만약 고객이 공손하게 주문을 하면 커피와 음료를 각각 얼마에 살 수 있을까요?

김재성 동아이지에듀 기자 kimjs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