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생각해낸 용어에 우쭐… ‘미래의 그늘’ 예상 못해 우울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자연히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하게 됐다. 휴가가 연중으로 분산됐나?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많은가? 등등의 질문이 연이어 떠올랐다. 그러다 동네 카페에 죽치고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저씨들이 평소보다 늘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군! 내가 예전에 책에 썼던 내용이 현실화된 것이로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00년대 중반 대기업 연구소에서 잠시 일했다. 당시 10년 뒤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해 책을 쓰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내가 맡은 부분의 제목이 ‘안전하게 즐기는 디지털 코쿠닝’이었다.
나는 코쿠닝이 디지털 기술, 특히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전 글을 찾아보니 “최근의 소비자들은 ‘누에고치’ 속에서 게임과 MP3 음악, DVD 등 디지털 기술을 즐긴다”고 정리가 돼 있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니 뽕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됐다(상전벽해·桑田碧海)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지금은 게임, 음악, 영화, TV 시청은 물론이고 인터넷뱅킹이나 길 찾기, 동영상 촬영과 편집 등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별별 일들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다소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로 폼을 잡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생각을 좀 더 정리하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 시야에 일종의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바로 ‘미래의 그늘’과 관련한 빈틈이었다.
얼마 전 선배로부터 ‘대기업에 다니는 요즘 젊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시 퇴근 후 집(자취하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즐길 것이 너무 많아 결혼이나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진심은 어떨까. 용케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자기 집을 마련하는 꿈은 너무 아득하고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해 자폐적인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닐까.
고뇌의 실마리는 휴가가 끝나갈 즈음 찾아간 강원도의 한 계곡에서 풀렸다. 좀 비겁하지만,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다 ‘내가 모든 걸 예측했으면 인간이 아니지’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팩트풀니스’의 핵심 메시지인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가 생각났다. 소셜미디어가 ‘아랍의 봄’을 불러온 것처럼 기술 발달로 인해 세상은 계속 좋아지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있던 아파트 설계자를 이해하자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회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적 발전만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계속 가슴에 품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21세기에도 역시 정신적 힐링에는 자연이 답이었다.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