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차 경제보복]재계 “근본적 정책 전환 절실”
피해기업 지원’ 머리 맞댄 금융당국-관계기관 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예산, 세제, 금융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피해 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4일 당정청이 일본 수출 규제 대응방안에 대해 한 화학 관련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산, 금융, 세제, 인력 지원도 필요하지만 규제 개선 등 관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정부와 정치권이 제거해달라는 호소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당정청 “가용 자원 총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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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공공 연구소의 인력을 파견하고 해외 전문 인력 유치 등도 지원하기로 했다. 해외 우수 인력 근로소득세 면제 한도 확대도 이런 차원에서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신규 자금 3조8000억 원을 공급해 중소기업 특별보증, 연구개발(R&D), 수입 다변화 등을 지원키로 했다. 기존에 마련된 경제활력제고 특별자금과 경영안정자금 등 2조9000억 원도 피해 기업에 투입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전공 교수는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품목의 물량 확보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업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당장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인력 양성 부분이 현장에 안착될 수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 인력을 민간에 지원하는 취지는 좋지만 정부출연연구소의 인건비가 높은 편이어서 인건비 지원 등의 대책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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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장비산업의 대외 의존도가 특히 높은 이유는 해당 업종의 특성 때문이다. 일본은 반도체산업 육성 당시 소재산업을 함께 키웠지만 한국은 생산 조립에 초점을 맞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결국은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개별 소재 시장의 규모 자체가 작은데 R&D를 하겠다고 기업들이 수조 원을 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전자 분야 일본 소재 산업은 이른바 ‘니치마켓’에 속한다. 전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야 R&D 투자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세계 전자산업은 미국이 두뇌를, 일본이 소재, 한국 중국이 조립하는 식으로 분업화해 발전해 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충남 금산에 있는 C&B산업은 일반 플랜트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지만 2011년 R&D를 통해 99.99999999%(텐나인) 고순도 불화수소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이 회사는 다시 생산 추진을 검토했지만 결국 불화수소 시장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다.
C&B산업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공장 부지 문제였다. 화학 관련 공장, 특히 불산을 다루는 공장은 정말 짓기가 어렵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규제뿐 아니라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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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까다로운 인증 테스트 관문을 넘으려면 실제 대기업에서 쓰는 첨단 설비가 갖춰진 환경에서 테스트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정부가 한국나노기술원 등을 통해 반도체 소재 및 장비 테스트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지만 장비가 실제 현장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근 교수는 “현실성 있는 한국형 테스트베드를 꾸리려면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닌 대기업 참여하에 운영돼야 한다”고 했다. 이덕환 교수는 “이번 기회에 소재·부품 업계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와 관련법들을 정비하는 계획도 시급히 내놔야 한다”고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김지현 / 세종=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