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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쪽지 받고 여동생 대하듯 친절 베풀었는데…하마터면 당할 뻔 했네!

입력 | 2019-07-22 15:38:00

동아일보 DB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모르는 여성에게 쪽지를 받았다. 프로필을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지나치려 했는데 어눌한 말투가 시선을 잡았다. 마치 번역 한 듯한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한 그는 울산이 고향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릴 때 영국으로 입양 됐습니다. 지금은 영국 남자와 결혼 해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사연을 읽자 답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린 시절 떠나 한국이 그립습니다. 당신의 SNS를 보니 한국 생각이 많이 납니다.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한국 생각 날 때 말 걸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당신은 친절한 사람입니다.”

해준 것도 없는데 친절한 사람이라 말해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30대 초반의 그 여성은 내 게시물에 ‘좋아요’도 눌러주고 능숙한 영어로 댓글도 달아줬다. 나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 사람 댓글에 또 다시 댓글을 달아줬다. 그럴 때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SNS에는 런던 시내에서 찍은 사진과 남편으로 보이는 외국인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외롭게 혼자 찍은 사진에는 늘 ‘MISSING KOREA(그리운 한국)’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너무 어릴 때 입양돼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형제자매가 있는지도 모른다며 언젠가 한국에 오면 나를 꼭 찾아오겠다고 했다. 타지에 여동생이 한 명 생긴 것 같은 심정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데 그가 좀 더 깊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기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고 사실상 돈에 팔려와 결혼 생활을 하는 거라고. 남편은 술에 취하면 자기를 학대하고 폭행까지 한다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같은 영혼 없는 위로가 전부였다. 그런데 며칠 후 그녀는 도저히 영국에서 못살겠다며 남편 몰래 한국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국에 올 짐을 다 쌌다며 캐리어 사진을 내게 보내왔고, 큰 짐은 화물로 보낼 생각이라며 우리 집 주소를 물어봤다. 집 주소는 알려주기 힘들다고 했더니,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이 제 계획을 알아버렸어요. 며칠 연락이 안 될 거예요. 한국에 가면 연락할게요.”

그리고 일주일 후, “저 지금 공항에 내렸어요. 그런데 짐이 너무 많아서 추가 비용을 내야하는데 200만 원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돈은 줄 수 없다고 했더니, 비행기 티켓과 입국심사장에서 찍어주는 도장 사진을 보내오며 믿어달라고 했다. 사진을 확대해 봤더니 비행기 티켓에는 ‘DEC2012’라는 단어가 선명했고 입국 심사장에서 찍었다는 도장은 위조한 듯한 잉크로 ‘KOREA’가 찍혀 있었다. 그 순간 ‘아, 사기구나’ 깨달았다. 그동안 속은 게 너무 분해 욕을 하고 싶었지만 “넌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넌 나쁜 사람이다!”와 같은 번역기를 통해서 나온 듯한 착한 욕밖에 쓸 수가 없었다. 화가 나서 다시 그 사람의 SNS에 가봤더니 아무 사진도 없는 유령 계정으로 변해 있었다. 아! 하마터면 당할 뻔 했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