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무관, 軍기밀 입수하다 귀국조치
다음 날 H 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당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일본 자위대의 영관급 장교(무관)를 만나 두 번 ‘세탁’된 기밀 자료를 전달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L 씨는 얼마 뒤 동일한 자료를 또 다른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100만 원을 받고 넘겼다.
북한의 미사일 시설 위치 등의 대북 첩보와 북한 정권 내부 동향 등 민감한 우리 군 기밀 자료가 복수의 누설자를 통해 일본 측에 넘어간 것이다.
15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H, L 씨가 일본에 유출한 74건의 기밀 자료에는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의 군사, 외교, 경제 등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 모두 정보사가 수집한 3급 군사비밀이다. 누설될 경우 정보의 출처와 수집 방법이 특정돼 외교 마찰이나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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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설된 군사기밀의 대부분은 북한 정권과 군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북한 군수공업부의 해외 군사기술 입수 추진’ ‘북한 군단 통화일람표’ 등 북한군 전력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북한의 소형 핵탄두 개발 관련 내용’ ‘북한 무수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지속 이유’ 등 수집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 군 정보 당국의 시각이 담긴 분석 자료도 있었다.
특히 ‘제3국 정보기관에서 분석한 A국 군대 현대화 동향’ ‘A국에서 분석한 북의 수중발사탄도미사일(ULBM) 개발 및 활용 가능성’ ‘G국 국방부의 최근 북한 무기 구매 동향’ 등 우리 군이 파악하고 있는 해외 정보기관의 첩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우리 군의 정보력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였다.
‘고순도 텅스텐 및 알루미늄 합금 밀반입 동향’ ‘A국의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 동향’ 등 북한의 대북제재 품목 밀반입 현황에 대한 자료도 일본에 넘겨졌다.
군사기밀은 ‘상품’처럼 취급됐다. H 씨는 정보사 후배에게 “용돈 벌이나 하자”며 설득해 2, 3급 군사기밀 100여 건을 빼냈다. 군사기밀 조회 단말기(DITS)에서 확인 가능한 군사기밀을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해 넘기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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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씨는 동료의 생사가 달린 이 자료를 중국 정보기관에 넘겼고 후배에게 대가로 670만 원을 지급했다.
L 씨는 H 씨를 통해 전달받은 군사기밀들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북한 관련 단체가 발행하는 ‘정세 분석 보고서’ 형태로 재가공해 일본에 팔았다. 일본 측은 L 씨와 ‘제공한 비밀자료를 SS, S급으로 나눠 평가해 그 대가를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의 비밀정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