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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직업은 정말 ‘우연’하게 결정된다[육동인의 業]

입력 | 2019-06-25 03:00:00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미국 이민이 한창이던 1980년대쯤 얘기다. 이민 가서 하는 일은 처음 공항에 마중 나온 지인의 직업에 따라 결정됐다고. 세탁소를 하는 지인이면, 그 집에 머물며 일을 도와주다 본인도 세탁소를 차리는 식이었다. 미국 실정을 잘 모르고, 영어도 익숙지 않으니 그게 가장 안전한 정착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직업이 그렇게 결정된다는 게 조금은 서글프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게 조금도 안타깝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미국 직업상담학계의 ‘전설’로 평가되는 존 크롬볼츠는 “직업 선택은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보다는 살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우연적인 사건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계획된 우연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공항에서 만난 지인의 직업을 따라 자기 직업이 결정되는 것은 절대로 이상하지 않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5월 90세로 사망한 크롬볼츠는 여러 저서를 통해 “청년기인 18세 때 계획했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성인은 2%에 불과하다” “직업 선택의 80%는 운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직업이 예상치 못한 사건과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직업상담 분야에서는 지금도 과학 쪽의 혼돈이론(chaos theory)이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에 비견될 만큼 중시되는 이론이다.

필자가 ‘직업학’과 인연을 맺은 경우도 그랬다. 10년 전쯤 언론계 생활과 짧은 공직을 마치고 민간 분야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헤드헌팅회사를 찾았다. 지인이 오너인 회사였는데, 그는 그때 마침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잠시 회사를 대신 경영해 줄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에서 3년여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직업을 찾으러 갔다가, 전혀 예상치 않게, 직업 찾아주는 회사에서 일하게 된 셈이다.

CEO 시절 경영자문을 하기 위해 알고 지내던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님이,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대학원 입학을 권했다. 지금까지 이어진 ‘직업학’ 공부는 어쩌면 그렇게, 아주 우연하게 시작됐다. 개인적인 예를 들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대부분 상당한 ‘우연’들이 겹쳐져서 오늘의 자신들이 만들어졌다는 데 공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직업은 완전 우연에 좌우될까. 크롬볼츠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우연적 사건들이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개인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우연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크롬볼츠가 제시하는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능력은 ‘호기심, 인내심, 유연성, 낙관성, 위험감수’ 등 5가지 요소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퇴직자들도 이 5가지 요소를 잘 새기면서 ‘오늘 당장, 작은 것부터라도 실행해 나간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은 일자리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획된 우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행운은 왜 나만 비켜가는 거야”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가 행운을 잡지 못했다는 고백일 뿐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