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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은 뛰어넘자는데…‘김원봉’ 한마디에 또 이념전쟁

입력 | 2019-06-06 21:05:00

보수야당 중심 반발…한국당 “귀를 의심케 하는 추념사”
‘김원봉 서훈 추서’도 재점화…靑 “추념사와는 별개”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 참배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9.6.6/뉴스1 © News1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1898~1958)의 업적을 기리는 언급을 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원봉발(發) 이념 전쟁’이 불붙었다. 보수 야당은 “귀를 의심했다”며 공세를 퍼붓고, 여권에선 “또 색깔론이냐”며 맞섰다.

문 대통령이 문제의 언급을 포함한 이날의 추념사 전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서 애국을 둘러싼 이념 전쟁의 종식’을 강조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아이러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이번 논란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서 문제도 다시 정치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애국이란 계급이나 직업,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며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인물들로 김원봉을 포함해 채명신 장군과 석주 이상룡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차례차례 언급하면서 김원봉 부분에선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며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구 선생 등을 언급하며 광복 과정을 설명하고는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약산 김원봉 © News1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끈 사회주의 계열 무장독립투쟁가로 우파 진영에서는 큰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넘어 광복 후에는 월북해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는 것에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원봉은 광복 전 광복군 부사령관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지만 북한 정권 수립후 노동상을 지내는 등 요직을 맡았다. 이후 북한의 김일성 체제 강화에 비판적이었던 연안파 제거 때 함께 숙청됐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이날 추념사에서 딱 한 번이자 한줄이었다. 함께 거론된 채명신 장군과 석주 이상룡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과 비교해도 특별대우를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편입된’ 사실을 언급한 이후 그런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와 한미동맹의 토대’로 거론하자 보수 야권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나왔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6·25에서 전사한 호국영령 앞에서 김원봉에 대한 헌사를 낭독한 대통령이야말로 상식의 선 안에 있는가”라며 “귀를 의심케 하는 추념사였다. 대통령의 추념사 속 역사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과 건국이라는 역사의 갈래를 분별하지 않고 또한 6·25전쟁이라는 명백한 북의 침략전쟁을 부각시키지 않다 보니 1948년 월북해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6·25전사자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곳에서 6·25전쟁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못하면서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를 굳이 소환해 치켜세우며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있지 않느냐”고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비판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이날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며 반박에 나섰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만든 애국의 역사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보수든 애국이든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국가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면 그게 진짜 애국이라는 게 이날 문 대통령이 추념사를 통해 하고자 했던 얘기라는 것이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야권을 향해 “색깔론을 덧칠한 역사왜곡”이라며 “채명신 장군이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하고 국가재건회의에 참여했다고 해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독재를 추종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독립영웅 김원봉이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굴욕을 당하고 쫓기듯 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대로 애달파할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논란은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서 문제로도 불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 정부에서 김원봉에 서훈을 안기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보훈처를 넘어 방송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며 “여기에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 정태옥 한국당 의원이 ‘김원봉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이냐’고 질의하자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한 것과 현재 방영 중인 MBC드라마 ‘이몽’을 겨냥한 것이다. 이몽에는 일제강점기 김원봉의 활약 등이 다뤄지고 있다.

야권은 문 대통령이 김원봉 서훈 추진에 적극적이라고 보고 있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8월15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남긴 글 등에서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이제는 남북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적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의도와 정반대인 상황 전개에 난처해 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약산 선생의 조선의용대가 국군의 뿌리나 한미동맹의 기초라고 (문 대통령이 얘기했다고) 보는 건 비약이다. (조선의용대가 편입된) 통합 광복군을 그렇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과 김원봉의 서훈 추서 건이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별개의 문제”라며 “보훈처가 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