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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재영]도 넘은 건설노조 갑질 또 다른 피해자 만든다

입력 | 2019-05-22 03:00:00


김재영 산업2부 차장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60대 A 씨는 매일 오전 5시 반이면 잠을 깨게 된다. 인근 건설현장의 확성기에서 새벽부터 터져 나오는 민중가요와 구호 때문이다. ‘우리 노조원을 우선 고용하라’는 건설노조의 시위가 벌써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A 씨는 “출근할 때도 현장을 피해 둘러가야 한다”며 “불법행위를 경찰은 왜 지켜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건설현장을 점거한 노조의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건 이곳만은 아니다. 서울에서만 10여 곳, 전국 곳곳에서 쉽게 목격된다.

이런 식이다. 신규 현장이 생기면 무작정 찾아가 “우리 조합원을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새벽부터 시위를 벌이며 현장 출입을 막는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단속한다며 출근하는 근로자를 검문한다. 확성기를 틀어 주변 주민들의 민원을 유발한다. 민중가요는 양반이다. 장송곡이나 공사 소음을 트는 곳도 있다.

노조원이 채용되면 노조원인 그 노동자를 대신 관리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회사로부터 수백만 원을 받아간다. 타워크레인 등 건설장비 기사들이라면 월례비(임금 외 별도 수당), 급행료 등을 요구한다. 초보자를 숙련공으로 둔갑시켜 높은 일당을 받아가기도 한다. 노조들끼리 세력 다툼이 격해지면 건설현장에서 폭력 사태까지 발생한다.

건설사는 무력하다. 노조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환경 관련법 위반, 불법 외국인 고용 등을 빌미로 회사를 협박한다.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작업하는 현장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트집을 잡을 수 있다. 공기가 지연되면 더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한 건설업체 사장은 “경찰에 신고를 해도 실제 단속이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노조로부터 보복만 당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8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강남구 개포동의 한 재건축 현장에 1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건설현장 추락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건설노조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다음 날인 9일 장관이 방문한 곳에서 3km 떨어진 건설현장에서 한국노총과 민노총 조합원들이 충돌해 20여 명이 다쳤다.

노조 측도 자신들의 행동이 지나친 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건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임금 체불 등 사측의 문제도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이제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 공사 방해 등 노조의 불법행위는 단호하게 대처하면서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 건설사가 제값 받고 공사하고, 근로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적정공사비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도 현장의 수요부터 파악해 대책을 찾아야 한다.

건설노조 갑질의 피해자는 건설사만은 아니다. 취업 기회를 잃은 비노조 근로자, 과격시위에 고통 받는 지역 주민, 아파트 입주가 지연돼 발을 구르는 수분양자 등 모두가 피해자다. 노사 문제가 아니라 민생 문제다. 이들의 눈물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김재영 산업2부 차장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