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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골드러시’… 경기부진-美中무역전쟁 잇단 악재에 불안감 확산

입력 | 2019-05-21 03:00:00

“내 재산 지키자” 金 투자액 지난달의 2배로 급증
안전한 달러-채권에 돈 쏠려 경제활력 저하 우려




20일 귀금속 매장이 밀집한 서울 종로3가. 부산의 한 사업체에 다닌다는 A 씨(62)가 부인과 함께 한 금은방에 들어섰다. 이날 하루 휴가를 내고 이곳을 찾은 A 씨는 1700만 원에 금괴 80돈(한 돈은 3.75g)을 산 뒤 여행용 가방 안쪽에 집어넣었다. “당분간 경제가 살아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네요. 원-달러 환율도 어찌 될지 몰라 차라리 금괴 실물을 사서 보관하는 게 제일 안전한 것 같습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미중 무역 전쟁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중 자금이 금, 미국 달러,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수익률을 노린 투자보다 자기 재산을 지키는 방어적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20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시중에서 매매된 순금 현물은 180kg으로 집계됐다. 금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약 2주 만에 지난달 전체 판매량(177kg)을 뛰어넘었다. 1월만 해도 월간 판매량이 53kg에 불과했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전무는 “금값이 g 당 4만 원대 후반으로 상당히 올랐음에도 이처럼 금 거래가 늘어난 건 차익을 노린 투자라기보다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공급량 부족으로 금괴 판매가 중단되는 일도 생기고 있다.

원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달러화 등 기축통화 자산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달러화 정기예금은 한 달 만에 약 2억 달러 늘었다. 은행과 증권사에는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금융 상품은 물론이고 달러 현찰을 사놓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되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조만간 1200원대를 뚫고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 금융시장이 침체되면서 돈이 필요한 기업들이 쉽게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진다. 국내에 있는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원화의 경쟁력도 낮아지고 그만큼 경기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안전자산 선호가 장기화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과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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