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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바뀌는 kg 기준

입력 | 2019-05-20 03:00:00


근대 과학은 실험을 중시한다. 실험을 위해서는 측정과 비교가 필요하다.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측우기(測雨器)가 ‘모셔져’ 있다.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과학철학자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한 TV 강연에서 이 측우기를 ‘깡통에다 자 하나 대 놓은 것’이라고 표현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측우기의 소박함을 폄훼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의 양을 측정한다는 생각, 나아가 똑같은 자로 전국에 내린 비의 양을 비교한다는 생각이고 그것이 과학 정신임을 강조한 것이다.

▷실험 과학의 면모가 갖춰진 17, 18세기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도량형의 세계적 통일을 모색했다. 그 결과로 미터법을 토대로 한 길이와 무게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길이의 기준인 1m는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 길이의 4000만분의 1로 정해졌다. 길이의 기준이 만들어지자 무게의 기준도 만들 수 있게 됐다. 1kg은 1000cm³의 물이 밀도가 가장 높은 섭씨 4도에서 지닌 무게로 정해졌다. 1799년 표준이 되는 미터 원기(原器)와 킬로그램 원기가 백금으로 만들어져 파리 ‘공화국 문서보관소’에 보관됐다.

▷백금이 단단하다고 하지만 온도와 습기에 따라 미세한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후에 국제미터협약을 거쳐 1889년 보다 정확히 만들어진 새 원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레이저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더 정확한 길이와 무게의 측정이 가능해졌다. m는 1983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빛이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공 속에서 진행한 거리로 새로이 정의됐다. kg에 대해서는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교환된다는 원리를 이용한 복잡한 계산 방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늦어져 지난해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비로소 새로운 정의가 채택됐다.

▷오늘은 세계측정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오늘부터 새로운 kg 기준을 적용한다. kg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체중이 변할 것을 우려하거나 기대할 필요는 없다. 1889년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그사이 최대 100만분의 1g이 줄어들었다. 새로 채택된 kg의 정의에 따라 무게를 환원한다 해도 고작 최대 100만분의 1g이 늘 뿐이다. 마블 시리즈의 앤트맨에게라면 몰라도 우리에게 이 정도 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양자 역학을 다루는 과학이나 나노 기술을 다루는 산업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정의다. 다만 일반인으로서는 더 이상 이해하기도 쉽지 않게 된 kg의 정의가 아쉬울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