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병산서원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병산서원은 안동 하회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면 나온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병산이, 남쪽으로 서원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누마루(만대루)가 나오고, 누하진입(누각 아래를 통해 진입)으로 계단을 몇 단 올라가면 서원 중심마당이 나온다. 중심마당 좌우로는 유학생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마당 위로는 강학공간인 입교당이 있다.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으면 병산서원의 명성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 건축의 한 정상과 대면한다.
병산서원의 건축가는 서애 류성룡이다. 건축가가 땅의 경사를 얼마나 섬세하게 신경을 쓰며 단차를 주었는지, 긴 만대루 너머로 주변 자연 환경이 수직적인 위계를 가지며 눈에 들어온다. 만대루의 긴 지붕 위로 병산이 들어오고, 지붕과 마루 사이에는 낙동강이 들어오고, 마루 아래로는 대문 너머의 길이 들어온다. 건물 배치에서도 미묘한 신경을 썼다. 동재와 서재는 흔히 평행인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재와 서재를 만대루 쪽으로 살짝 벌렸다. 병산이 실제보다 좌우로 시원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대루를 동재와 서재 사이의 틈 사이에 맞춰 짓지 않고, 틈 너머로 길게 지은 점도 수평적 확장을 부추긴다.
병산서원이 과거 건축에 대한 향수로만 머물 수는 없다. 병산서원은 현대 학교 건축에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본다. 그중에서도 만대루에 지혜가 응축돼 있다. 한국의 캠퍼스들에 이미 지어진 교정은 어떻게 고쳐져야 할지, 앞으로 지을 교정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일깨워준다. 요새 한국의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노는 꼴을 못 본다. 학교에서 쓰임새가 불분명한 공간은 공부방으로 만들거나 최첨단 장비를 넣어 실험실로 만든다. 빈 공간, 열린 공간을 보는 순간 ‘노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벽을 세워 방을 만든다. 방들로 꽉 찬 공간에서 숨 막히게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만대루가 있는 트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입교당이 강학공간이면, 만대루는 유식(遊息·편히 쉼)공간이다. 병산서원에서 만대루를 입교당보다 더 크게 지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대루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마치고 쉬면서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소다. 창의적인 생각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만대루처럼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며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나온다. 오늘날 학교에 필요한 것은 만대루의 비움과 여유다.
만대루가 전하는 3가지 메시지에 귀 기울이자. 첫째, 자연과 하나 된, 더 나아가 자연을 살리는 학교를 짓자. 둘째, 푸른 산 옆에 학교를 짓고 이를 마주하여 유식공간을 지어 주자. 셋째, 채우고 쌓는 학교가 아니라 비우고 더는 학교를 짓자. 이를 귀담아듣는다면 우리는 입교당 중심의 교정 시대에서 벗어나 만대루 중심의 교정 시대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