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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더라도 보복?… 정치갈등이 경제 망치는 일 막아야”

입력 | 2019-04-29 03:00:00

[위기의 한일관계]한일 전문가 양국 갈등 진단




“북한 유조선 ‘유성호’가 국적을 알 수 없는 소형 선박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25일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20일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유조선 ‘유성호’가 불법으로 환적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공개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촬영한 것으로, 유성호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자산 동결과 입항 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선박이었다.

○ 대북 공조 불발은 양국에 타격

일본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총 12건의 북한 불법 환적 의심 자료를 잇달아 공개했다. 문제는 이처럼 대북제재 위반 사례에 대한 일본의 집중적인 감시 태세 강화는 대북제재 완화를 고려하는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한일 안팎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양국 관계 악화가 외교적으로 서로 아픈 곳을 겨냥할 정도로 나빠졌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한일 전문가들은 양국의 외교 대립은 대북 공조 붕괴로 이어져 모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궤도에 올리기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한일 간 대립으로) 그런 ‘선택지’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이는 일본 정부에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 쪽에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외교적 카드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군 유엔사가 후방기지로 활용하는 일본의 협력이 유사시에 필요한데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면 대북 정책, 비핵화 협상에서 치명적”이라며 “한미관계 악화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 직접 관계없어도 ‘한일 관계 악화’ 탓으로 돌려

지난해 11월 열릴 예정이었던 한일 양국 간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부터 올해 5월 한일경제인회의까지 한일 경제인들 간의 주요 회의가 한일관계 악화를 이유로 잇달아 연기, 취소되면서 경제 교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에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 ‘페로텍홀딩스’가 기술 유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사업을 정리하려 했지만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이를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때문에 철수한다”고 보도했다.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도 ‘한일 관계 악화’로 몰아가는 기류가 나타나는 셈이다.

일본 역시 손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 회의에서 한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수입해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불화수소에 대해 ‘수출 중단’을 하자며 보복 조치가 거론됐다. 국내 한 반도체 업체의 일본 지사 관계자는 “그 불화수소를 수입해 만든 반도체를 일본이 수입해 쓰고 있어 일본도 그 보복 조치로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로명 전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치인들이 일본도 타격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한국에 보복을 하겠다고 나선 것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막장’ 스타일 보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인들은 ‘한일 단교’를 외치는 혐한 세력의 부각을 우려하고 있다. 곤도 세이이치(近藤誠一) 전 문화청 장관은 “‘한일 관계가 나쁜 것이 낫다’고 말하는 이런 혐한 세력이 더 커지면 양국 모두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6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과거사에 대한 사과 요구와 경제 문제에 대한 접근을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 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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