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회담장에 구겨진 태극기
“임계점을 넘었다. 강경화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외교부가 잇따른 외교 결례에 이어 4일 구겨진 태극기를 놓고 스페인과의 외교 행사를 치른 게 드러나면서 외교가는 물론 정부여당 내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국가 의전의 최고 전문가 집단이어야 할 외교부가 아마추어 수준의 결례를 반복하면서 조직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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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안팎에선 무엇보다 강 장관의 아마추어리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글자 하나하나에 뜻과 파장이 전혀 달라지는 고도의 외교 업무를 수행하면서 대충 지나가는 일이 강 장관 취임 후 자주 목격된다는 게 정부 안팎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임자들이 지나치게 일에 몰두해 직원들의 원망을 샀다면 강 장관은 ‘워라밸’ 시대에 맞는 장관이라는 평가가 있다. 외교는 밤낮 없는 전쟁인데 아쉬운 면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윤병세 전 장관 시절에는 주요 간부들이 한밤에 모여 토론하는 심야 끝장회의가 자주 열렸다. 하지만 강 장관 임명 후 이런 문화는 갑자기 사라졌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문서 작성이나 외교 행사 준비에 기울이는 집중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말이 많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전에는 주요 이슈가 있을 때 당국자들이 크로스 체킹을 하다 보니 최소한 대형 실수는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확실히 업무 강도가 줄었지만 가끔 나조차도 ‘이래도 되는 걸까’ 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북핵 이슈가 외교안보의 최우선 사안이 되면서 핵심 북핵 어젠다는 대부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틀어쥐고 있어 자연스레 외교부의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교부가 북핵과 관련해 별로 정보가 없다. 청와대 안보실이나 국가정보원에서 북핵 관련 핵심 정보를 주지 않으면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전 정부에서 잘나가던 핵심 외교관들을 대거 적폐 인사로 분류해 보직에서 제외한 것도 외교부 조직이 갑작스레 ‘당나라 조직’으로 전락한 요인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직 외교관은 “전문가들을 대거 내쫓은 상태에서 무슨 외교가 제대로 되겠느냐. 구겨진 태극기 같은 사고는 조만간 다른 형태로 또 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