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잡는 사무장병원 <중> 인권 사각 요양병원
입원실 상태는 더 참혹했다. 환자가 맞는 포도당 수액은 사용기한이 10개월가량 지나 있었다. 의료용품 보관함에서 나온 멸균 증류수와 의료용 장갑 등 256개 의료용품 가운데 사용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 한 개도 없었다. 이 요양병원은 2015년 9월 개원했는데, 영양 수액의 유통기한은 2014년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을 싼값에 사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건보공단은 의사 박모 씨(53)를 대리 원장으로 앉히고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건보 진료비 42억 원을 빼돌린 임모 씨(58)를 경찰에 넘겼다.
요양병원은 본래 외과 수술 등을 받은 뒤 회복을 위해 입원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요양병원이 적은 비용으로 오래 입원할 수 있어 노인들의 ‘장기 숙소’처럼 활용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노인 요양원에 입소하려면 치매 등 질환의 중증도를 인정받아야 하는 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병원은 등급 없이도 입원할 수 있는 점도 노인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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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 등 불법 개설 기관 1531곳 중 요양병원은 277곳으로 18.1%다. 하지만 이들이 빼돌린 돈은 모든 불법 개설 기관의 부당 청구액 2조5490억4300만 원 중 절반이 넘는 1조3368억9200만 원이다.
환자를 ‘돈벌이’로만 인식하는 사무장 요양병원의 ‘야만성’은 지난해 1월 45명이 화재로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요양병원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병원 행정이사 우모 씨(60·여)는 장례식장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인공호흡기 산소 투입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사무장 요양병원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입증됐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사무장 요양병원 내에서 숨진 환자는 병상 100개당 연평균 165.9명으로 일반 병원(21.9명)의 7배 수준이었다. 환자들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고 가정해 분석한 ‘중증도 사망비’도 사무장 요양병원이 일반 병원보다 11.6%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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