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00조원대 슈퍼예산 예고]적극적 예산 운영 ‘지침안’ 의결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경기가 가라앉는 가운데 기업 실적과 고용 사정이 함께 악화돼 양대 세금 항목인 소득세와 법인세를 작년만큼 걷기 어려워졌다. 적극적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세금을 걷을 만한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업 실적 추락, 세수 전망 어두워도 정부 지출은 더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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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적극적 재정 운용’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원하는 만큼 돈을 풀려면 세수가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전망이 어둡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기업 활동이 부진하면 이익 감소, 배당과 임금 감소, 소비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경제 부문마다 세금을 낼 여력이 줄기 때문이다. 법인세뿐 아니라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수가 동반 감소할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코스피 상장사의 예상 영업이익은 33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조1000억 원)보다 38.1%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말 추정치(39조9000억 원)에 비해서도 16% 감소한 수치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전망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8개월간 동반 하락했다. 두 지수가 8개월간 같이 떨어진 건 1971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힘입어 계획보다 세수가 25조 원 이상 걷혔던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는 세수 여건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세수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일자리 지원으로 분배 개선 한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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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보건 복지 고용 부문 예산은 전체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내년에 500조 원의 예산이 편성되는 데다 복지 예산 증가세가 다른 분야보다 가파른 점을 감안하면 복지 관련 예산이 180조 원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편성 지침을 통해 “고용 분배 등 민생의 어려움은 경기 구조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단기간 내 개선이 쉽지 않다”며 재정 투입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우선 일자리 지원을 강화하고 저소득층, 자영업자 지원, 고교 무상교육,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등에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소득층 구직자의 생계를 돕는 ‘한국형 실업부조’도 내년에 처음 도입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직업훈련을 강화해 일할 수 있는 취약계층의 고용안전망도 정비하기로 했다.
○ “감세로 기업 투자 지원해야”
국회예산정책처는 올 1월 장기 재정전망을 통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38.4%에서 내년에 39.5%로 늘어나는 데 이어 2030년에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봤다. 지금은 재정이 건전해 보이지만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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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무지출은 출생아, 학생, 병역의무 이행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고령층이 늘어나는 인구 추세를 감안해 지출 구조를 개편키로 했다. 특정 연령대 인구 증감 추이에 따라 의무지출 규모를 조정키로 한 것이다. 예산을 편성한 뒤 다 쓰지 못해 이월되거나 불용처리되는 의무지출 사업도 축소토록 할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처에서 예산을 짜며 지난해 예산에 일정액을 관성적으로 더해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올해 통계청의 장래인구 특별추계를 반영해 예산을 새로 짜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과 국민의 세 부담을 늘린다면 오히려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을 줄여줘 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돕거나 기업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기업 심리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