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대상 청소년에서 보호관찰직 공무원(9급)이 된 정지훈 씨(왼쪽)가 20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당시 보호관찰 담당관이었던 민경원 계장의 손을 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정 씨는 이날 정식으로 임용, 서울소년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제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게 믿기질 않네요.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정지훈 씨(26·사진)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정 씨는 20일 오전 9시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의 보호관찰직 공무원(9급)으로 첫 출근을 했다. 정 씨 옆에는 그가 유일하게 ‘선생님’이라 부르는 수원보호관찰소 민경원 계장(45·여)이 있었다.
정 씨에겐 사실상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없다. 2009년 초 정 씨는 진학한 지 얼마 안 된 고교를 자퇴했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부모와의 갈등도 심해졌다. 그 대신 정 씨는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렸다. 가출이 잦아졌다.
인천보호관찰소에 처음 찾아간 2010년 6월, 정 씨는 ‘선생님’을 만났다. 민 계장은 정 씨 이야기를 들어줬다. 민 계장은 정 씨가 찾아올 때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정 씨는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저지른 비행을,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식당에서 서빙을 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민 계장은 “다음에는 자랑할 이야기를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학업의 끈을 놓지 말라며 검정고시를 권유했고, 요리사의 꿈도 이어가라고 했다.
보호관찰 기간인 6개월 동안 정 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년 뒤엔 대학 진학 대신 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꿈에 한발 다가갔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민 계장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더 이상 인천보호관찰소에 없었다. 보호관찰소 측은 신변 보호를 이유로 민 계장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군 제대 후 정 씨는 자신과 비슷하게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을 계도하고 싶어졌다. 가까스로 민 계장을 찾아 “선생님의 후배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 1년 6개월 만에 민 계장과의 약속을 지켰다.
정 씨는 그때 당시 내밀어준 민 계장의 손이 누구의 손보다 따스했다고 말한다. “그때 누가 날 잡아줬기에 멈출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제가 과거의 나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민 계장은 정 씨의 임용을 축하하기 위해 이날 서울소년원을 찾았다. “그날 지훈이를 만났던 건 내게도 운명 같은 일이다. 이제 지훈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다”라고 말하는 민 계장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이번엔 정 씨가 말없이 민 계장의 손을 잡았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