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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문제아’가 문제아 돌보미로

입력 | 2019-03-22 03:00:00

보호관찰대상 청소년에서 보호관찰직 공무원(9급)이 된 정지훈 씨(왼쪽)가 20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당시 보호관찰 담당관이었던 민경원 계장의 손을 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정 씨는 이날 정식으로 임용, 서울소년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제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게 믿기질 않네요.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정지훈 씨(26·사진)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정 씨는 20일 오전 9시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의 보호관찰직 공무원(9급)으로 첫 출근을 했다. 정 씨 옆에는 그가 유일하게 ‘선생님’이라 부르는 수원보호관찰소 민경원 계장(45·여)이 있었다.

정 씨에겐 사실상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없다. 2009년 초 정 씨는 진학한 지 얼마 안 된 고교를 자퇴했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부모와의 갈등도 심해졌다. 그 대신 정 씨는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렸다. 가출이 잦아졌다.

2010년 4월 정 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혐의는 특수절도. 늦은 새벽 친구와 길가에 묶어둔 자전거를 훔친 탓이었다. 검찰은 “6개월간 보호관찰 기간을 가지라”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운이 나빴다’고만 생각했다. 형식적으로 제출한 반성문이 전부였다.

인천보호관찰소에 처음 찾아간 2010년 6월, 정 씨는 ‘선생님’을 만났다. 민 계장은 정 씨 이야기를 들어줬다. 민 계장은 정 씨가 찾아올 때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정 씨는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저지른 비행을,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식당에서 서빙을 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민 계장은 “다음에는 자랑할 이야기를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학업의 끈을 놓지 말라며 검정고시를 권유했고, 요리사의 꿈도 이어가라고 했다.

보호관찰 기간인 6개월 동안 정 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년 뒤엔 대학 진학 대신 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꿈에 한발 다가갔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민 계장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더 이상 인천보호관찰소에 없었다. 보호관찰소 측은 신변 보호를 이유로 민 계장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군 제대 후 정 씨는 자신과 비슷하게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을 계도하고 싶어졌다. 가까스로 민 계장을 찾아 “선생님의 후배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 1년 6개월 만에 민 계장과의 약속을 지켰다.

정 씨는 그때 당시 내밀어준 민 계장의 손이 누구의 손보다 따스했다고 말한다. “그때 누가 날 잡아줬기에 멈출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제가 과거의 나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민 계장은 정 씨의 임용을 축하하기 위해 이날 서울소년원을 찾았다. “그날 지훈이를 만났던 건 내게도 운명 같은 일이다. 이제 지훈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다”라고 말하는 민 계장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이번엔 정 씨가 말없이 민 계장의 손을 잡았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