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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3·1운동 투옥자 중 독립유공자 인정 못 받은 342명 찾았다

입력 | 2019-02-20 03:00:00

[2019 3·1운동 100년, 2020 동아일보 100년]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1014명 분석




1919년 3·1운동 가담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3000여 명이 투옥됐다. 이 가운데 1014명의 수형기록카드(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가 남아 있는데 유관순 한용운 노순경 이승훈 등의 카드(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도 전해진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까지 치렀지만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342명이 새롭게 확인됐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최근 ‘일제 감시 대상 인물카드’(등록문화재 제730호)에 등재된 4858명 가운데 3·1운동 가담 혐의로 붙잡힌 1014명을 조사한 연구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분석’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미포상자 가운데는 3·1운동 체포자 가운데 최고 형량인 12년형을 받은 홍면과 10년형을 받은 김동순 등 단순 가담자가 아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사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919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학생독립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이끈 김운종, 박춘범 등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강학병, 안교열 등 3·1운동 이후에도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어간 이들도 있다.

1014명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 남녀노소 직업불문 전 민족이 참여한 만세시위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연구를 진행한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대다수 미포상자는 관련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정부에서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분들”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서훈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 남녀노소 모든 직업 총망라한 거국적 시위

일제 식민지 경찰의 보조원이었던 조선인 순사보(巡査補) 정호석. 그는 1919년 3월 1일 덕수궁 대한문을 지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경성 시내를 진동케 하는 만세 시위단의 함성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다.

3월 5일 정호석은 왼손 약지를 물어뜯어 태극기를 그려 대나무 봉에 매달고 집을 나선다. 그가 향한 곳은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홍영학교.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마침내 20여 명의 학생을 이끌고 마포구 공덕동까지 진출해 밤새 만세운동을 전개한다.

결국 자신이 속한 일제 경찰에 붙잡힌 그는 이듬해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1년 형을 선고받고, 그해 5월 29일 만기 출옥한다. 정호석뿐 아니라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사무소의 소사(小使)였던 송재만, 경북 안동시 예안면장이던 신상면 등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의 행정조직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거 3·1운동에 합류했다는 점이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수형자들의 직업을 분류한 결과 무려 80여 개의 직업이 등장했다. 학생과 야소교(耶蘇敎·기독교) 목사 및 전도사, 천도교 교사, 임제종 불교 승려처럼 3·1운동을 주도한 집단만이 아니었다. 인쇄소 직원과 점원, 고물상, 잡화상, 마차꾼 등 직업과 계급을 초월해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3·1운동에 참여한 연령 역시 흥미롭다. 1014명 가운데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984명을 보면 20대가 39%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30대(22%), 40대(15%), 10대(12%), 50대(7%), 60대 이상(2%) 순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전체 기간 동안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중에는 20대가 57%로 압도적으로 높은 것과 비교된다.

박 관장은 “3·1운동 당시 20대 젊은이들의 참여가 적은 것이 아니라 10대와 30대 이상 등 모든 연령이 고르게 참여해 상대적으로 20대 비중이 낮아졌다”며 “직업과 연령을 초월한 거국적인 만세시위였다는 점이 통계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 가족과 급우들이 한꺼번에 만세시위 참여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 참가자들도 대거 확인됐다. 특히 서울 세브란스병원 의학전문학교의 간호사였던 노순경, 김효순, 이신도 등은 절친한 학교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1919년 12월 2일 종묘 앞에서 20여 명의 군중을 이끈 채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됐다. 인물카드에는 모두 ‘경성 남대문정 의학전문학교 부속 간호부 양성소 기숙사’라고 주소가 적혀 있다. 유관순 여사의 가족 중에는 숙부 유중무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었다.

일제는 3·1운동 가담자에게 사상범에게 적용하는 ‘보안법’을 적용했다. 이로 인해 90%에 이르는 투옥자들이 법원에서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관장은 “현재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비교해 봤을 때도 일제가 지나치게 높은 형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의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이 펼친 위대한 독립운동인 3·1운동의 진면목을 한국 사회가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내용은 2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관련 연구 자료집은 26일 전국 도서관 등에 배포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