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컨트롤타워의 비명]윤한덕 센터장 과로사 부른 의료현장
쉴틈 없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 7일 오후 3시경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에서 당직 의료진이 전국 응급실의 빈 병상 수를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윤 센터장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에게 종종 “응급실이 지옥 같다”고 토로했다.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환자가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가 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 현실이 집약된, 전국 응급실의 비명이 집중되는 곳이다.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은 윤 센터장의 빈소가 차려진 이날에도 변함없이 북새통 같은 분위기였다. 한 당직 의료진이 “서울 ○○병원에 ICU(중환자실)가 없대요”라고 외치자 다른 의료진이 곧장 상황판에 뜬 각 병원의 빈 병상을 살펴보더니 인근 병원에 연락했다. “바이탈(생체 신호)은 괜찮은데 외과적인 관찰이 필요해서 그러니 받아주세요”라며 읍소에 가까운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윤 센터장은 2017년 10월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로 이어지는 열흘간의 연휴를 한 달여 앞두고 페이스북에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다!”라고 썼다.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응급실 빈자리가 부족해져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칠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었다. 이 글을 올린 지 며칠 뒤 윤 센터장은 “오늘은 몸이 세 개, 머리가 두 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며 응급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페이스북에서 한탄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급히 진료를 보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환자가 응급실 병상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연구소가 2016년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환자 4만6558명을 응급도에 따라 다섯 단계로 구분한 결과 비응급 환자에 해당하는 4, 5급 환자가 3만3663명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했다. 실제로 5급 환자 1만1967명 중 91.2%는 간단한 처치만 받고 퇴원했다. 응급도가 가장 높은 1급 환자는 341명(0.7%)에 불과했다.
이는 중증 응급 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7년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 1222명이 처음 찾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통계도 있다. 응급실 의료진은 경증 환자를 상대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린다. 1일 가천대 길병원에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A 씨가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 병상을 차지하는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야간에 외래 진료가 가능한 동네 병·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녁 시간 이후 발생한 경증 환자 대다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찾기 때문이다. 허윤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은 “늦은 저녁까지 영업하는 대형마트나 영화관에 세제 혜택을 주고 내과나 소아과 의원을 영업할 수 있도록 하면 경증 환자는 편리하게 진료를 보고, 응급실은 그만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경영진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응급실 및 중환자실 운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일반 병실에 비해 투입되는 인력 및 장비 대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병원에 적자를 감수하고 병상을 늘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